
[당선 소감]
가을볕이 들면서 매미 소리가 방울벌레 소리로 바통 터치를 했다. 바뀌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모종의 반가움이 갈마들면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여름에 피어야 할 꽃들의 시듦과 가을에 새뜻하게 피는 국화를 보면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계절의 아름다움과 거기에 담겨진 실감을 가져보곤 한다.
묵은 얘기에 새로운 생각을 보태고자 했으나 의도만큼 돌올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이만치 귀를 기울여주신 덕분에 은은한 방울벌레 소리의 목청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다. 소통의 작은 물꼬를 튼 것이라 여기고 이 은성한 가을의 빛과 그늘과 풍광을 즐기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다솜의 기운이 역력해지길 바란다.
[제5회 코스미안상 은상] 구멍 난 보자기
한 사회의 포용력은 한국의 보자기와 같아야 한다. 어머니가 쓰다 남기신 낡고 구멍만 보자기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요즘의 상품들의 맵시만 보더라도 번듯하고 화려한 금박의 포장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이내 내용물을 빼고 나면 금방 쓰레기로 버려진다. 그럴 때면 어릴 적 시골 오일장의 벼슬이 붉은 수탉이 보자기의 품에 싸여 보자기의 매듭 사이로 머리를 내민 채 부리부리한 눈매와 부리를 드러내던 풍경이 언뜻 떠오른다. 펼치면 평범한 한 장의 천 조각에 불과한 이 보자기는 다양한 물건에서부터 가축들까지 못 담아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전방에 군 복무하는 형을 면회하러 가기 위해 어머니는 전날 밤부터 약밥을 준비하셨다. 동료 선임과 후임 병사들과 함께 나눠 먹으라고 잣과 밤과 대추 등속을 넣고 넉넉히 약식을 손수 마련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아버지가 결혼 주례를 서주고 받으신 와이셔츠 빈 갑에 비늘을 깔고 푼푼하게 담으셨다. 그런데 그것으론 어딘지 새벽길에 전방까지 들고 가기가 허술했다. 그때 장롱 밑 칸에서 어머니가 꺼내신 것은 한 장의 붉은 보자기였다. 많이 헤진 듯 보였지만 약밥을 넣은 와이셔츠 갑을 감싸 두르고 옭아매자 선물 세트처럼 새뜻하니 단정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당신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온 낡은 보자기는 사실 유품이랄 것도 없다. 큰 활자꼴의 성경책과 기도서를 담았던 보자기는 그렇게 유품을 감쌌던 포장지에 불과했다. 그렇게 뒷전으로 버려지려던 보자기가 다시 눈에 들어온 건 보자기 모퉁이에 뚫린 엄지손가락 굵기의 구멍 때문이었다. 꼭 단순히 닳고 해져서 생긴 구멍 같지만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당신 생전에 숱한 물건들의 각진 모서리를 감싸느라 일종의 치받친 자리인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랬다. 이복누이를 포함해 여섯 형제자매를 무난하게 또 무탈하게 건사하고 길러내느라 어쩌면 저리 힘에 부치게 치받치기도 했으리라. 살림 또한 박봉의 남편 형편으로는 쉽지 않은 거였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양봉을 하며 우리 자식들을 이러구러 사회 나가 큰 낙오 없이 자라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셨다. 새벽부터 묵묵하게 기도하고 감내하고 부업을 통해 살림을 보탰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당신 자신을 자식들을 길러내는 늡늡한 삶의 보자기로 쓰신 듯했다. 내성적이셨지만 나름의 오지랖은 있는 분이셨다.
어느 해인가 오일장 근처 정류장에서 팔이 부러져 깁스한 청년을 본 적이 있다. 마침 깁스한 팔을 어깨와 목에 걸어 받쳐주던 끈이 끊어졌다. 순간적인 낭패였다. 그런 청년을 보고 있던 할머니가 어느 틈엔가 청년에게 다가갔다. 품에서 꺼낸 보자기는 일순간에 깁스한 청년의 팔을 감싸더니 어깨와 목을 에둘러 묶어 고정시켜 주었다. 보자기는 청년의 깁스한 팔을 가슴 앞에서 덜렁거리지 않게 안정감 있게 잡아주었다. 보자기 안에 담긴 석고 깁스한 팔은 해먹을 타듯 미소 짓는 듯했다. 그럴 때 보자기는 무엇을 가리는 한정된 용도를 넘어서곤 한다.
보자기는 무엇이든 감싼 물건이나 숨탄것의 몸매를 있는 그대로 넉넉하게 감싸 드러낸다. 나는 이런 보자기의 특성이 현대 패션에선 몸매를 강조하는 스타일이나 혹은 반대로 몸매를 감추듯 넉넉하게 품는 스타일이든 다 가능한 형태로 확장된 아이템을 제공할 수 있다고 여긴다. 보자기는 사물을 포장하고 운반하는 역할이지만 확장성의 측면에선 천재적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가만한 사물만 같다.
어린 시절 가방이 비싸 대신 사용했던 책보도 사실은 보자기였다. 크로스백처럼 책보자기를 둘러매고 메뚜기와 방아깨비 튀는 들판과 논둑길을 달려 학교를 가던 가을날은 너무 흔연한 풍경이었다. 드문 경우이지만 몇 년의 산고 끝에 장편소설을 탈고한 무명 소설가가 원고지를 보자기에 싸서 출판사로 가는 장면을 작가의 보람처럼 떠올리던 시절도 있었다.
울퉁불퉁한 비정형의 몸통도 잘 감싸는 게 한국의 보자기이다. 중뿔나게 튀어나온 곳도 보자기는 구멍 난 데로 내보내거나 매듭 사이의 공간으로 각(角)을 빼 포장을 마무리 짓는다. 그럴 때 보면 보자기는 요즘처럼 신축 밴드가 내장된 것도 아닌데 이리저리 유연하게 물건을 잘 감싸는 무던함이 있다. 보자기가 물건을 마다하는 적은 거의 없다. 이 무던한 포장의 힘은 끈기 있게 물건의 형상이 지닌 완고함을 유연하게 담아내는 포용력에 있다. 보자기는 특별히 자기 스타일이나 주장이 없다.
보자기는 자신이 감싸고 포장할 대상의 모양과 성상에 자신을 맞추는 무골호인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보자기로서의 기능이 탄생한다. 보자기의 스타일은 보자기가 감싼 물건의 형상에 자신을 맞춤으로써 드러나는 실물의 패션이다. 그러다 보니 보자기는 각진 물건들의 모서리에 보이지 않게 해지기 십상이다. 처음엔 헐듯이 보자기 천이 얇아지다가 어느 순간 무심코 손에 쥐었을 때 손가락이 슬그머니 빠지듯 구멍이 나기도 한다. 해진 보자기를 볼 때면 가슴이 은근히 먹먹하다. 누이의 조현병 발병과 크고 작은 우환이 채송화꽃처럼 번지던 집안 사정에서도 당신은 묵묵히 감내하고 감싸는 보자기였다. 그러나 어느 날 바람이 휙 불었을 때 나는 보고 말았다.
어머니의 정수리와 뒷머리에 난 원형탈모의 구멍을 말이다. 설움과 안타까움이 북받쳤으나 나는 그마저도 당신한테 충격을 줄까 봐 내 감정을 최소 단위의 보자기 크기로 접고 또 접었던 적이 있다. 왼손잡이인 당신이 보자기의 물건을 들 때 매듭을 쥐면서도 한 손가락은 이 구멍에 빠지며 꿰기도 했을 순간이 돌올하다. 지금은 닿을 수 없는 당신의 그 손가락을 한번 만지고 싶다.
어머니의 보자기에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반쯤 마름모꼴로 펼쳐진다. 가난하면서도 주변을 대할 땐 유난히 손이 컸던 당신. 가난은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가난한 거라고 묵묵히 보여주신 듯하다. 나는 장난인 듯 낡은 보자기에 드리운 오후의 햇살 조각을 이리저리 보자기 귀퉁이를 여며 싸보려고 한다. 그러는 사이 햇살은 들어가고 어머니 생각은 습습하다.
낡고 빛이 바랜 보자기를 가만히 뺨에 갖다 대 본다. 세상 어느 비단보다도 이 낡고 낡아 보풀조차 일지 않는 낡은 보자기의 감촉이 더 부드럽고 그윽하기 그지없다. 보자기의 구멍에 손가락을 차례차례 넣어보고 급기야는 마스크처럼 코를 넣어본다. 귀도 넣어보았다가 눈을 넣어보니 왠지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이런 모습으로라도 생전의 어머니 당신을 웃겨드릴 걸 그랬다.
왠지 그러는 거 같다. 어머니의 보자기는 그 무엇이든 예쁘고 값나가는 것만 밝히지 말고 흉허물도 잘 감싸주라는 거 같다. 덜 되고 몬존하고 허술한 물건과 사람도 그윽하고 곱게 감싸주라는 정표만 같다. 보자기는 그렇게 내게 옛날이나 오늘이나 한결같이 오지랖처럼 펼쳐져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매끈하고 단단한 포장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군(人物群)만을 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강박관념에 일부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느 한 대상에게는 시대의 대세처럼 그럴듯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대상이나 숨탄것을 품을 때는 규격이 꼭 맞으란 법이 없다. 일정한 관습적 기준이나 통념의 잣대, 일반적인 형식에 벗어난 사람이나 사물을 우리는 흔히 사회적 이탈자나 루저로 간단히 규정해 낙오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사회가 스스로 품성과 사회성을 저버리는 행위에 해당한다. 어떤 값싼 시대적 관념으로 쉽게 소외되거나 무시돼도 좋은 존재란 애초에 있을 수가 없다.
구멍 난 보자기는 규격이나 무게가 안 맞아 포장이 껄끄러운 대상조차 있는 그대로 내남 없이 품는 어머니의 냅뜰성을 닮았다. 우리 사회의 보수와 중도와 진보의 다양한 주장과 성향을 아우르는 시대의 어른이 내는 말씀의 보자기를 듣거나 펼쳐보고 싶은 것도 평소 내 종요로움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