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영 칼럼] 차가운 비난보다는 따스한 관용을

제5회 코스미안상 은상

[당선소감]

 

올해부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집에서 가치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취미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나 자신이 평소에 하는 생각을 글로 써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 글쓰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글쓰기를 이따금 취미로 하다가 우연히 코스미안 칼럼 공모전을 알게 되었습니다. 칼럼을 통해 평소에 제가 가지고 있는 인문학적 사고방식을 다양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공모전에 참석하게 되었고 인문학 칼럼을 써보는 것이 자기계발의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별거 아닌 제 글을 귀하게 바라봐주신 심사위원에게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사회 구성원 각자가 향유하는 인문학적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의 만들어주신 코스미안뉴스 관계자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제5회 코스미안상 은상] 차가운 비난보다는 따스한 관용을

 

언젠가 천 원짜리 지폐의 인물로 유명한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해 구전으로 전해지는 한 일화를 들은 적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은 20대에 첫 부인과 안타깝게 사별한 후에 30대에 권씨 부인을 만나 재혼을 했다고 한다. 권씨 부인은 지적 장애가 있었다. 어느 날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제사상에서 떨어진 배를 권씨 부인이 몰래 치맛자락에 숨겼다고 한다. 하지만 철없는 행동은 금새 들켰고 집안 어른들은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에 분개했다. 

 

그러자 퇴계 이황 선생은 권씨 부인을 다른 방으로 조용히 부른 후에 떨어진 배를 숨긴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권씨 부인은 나지막하게 배를 먹고 싶었다고 답했고 그 대답을 들은 퇴계 이황 선생은 상냥하게 웃으며 직접 배를 깎아주었다고 한다. 조선에서 예법에 제일 능하다 할 수 있는 그였지만, 상대방의 사정을 이해하려 하고 미숙한 실수에 비난과 분노보다는 관용을 베푼 것이다. 이렇게 한없이 부드럽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던 퇴계 이황 선생의 관대함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세상사를 보면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관대함을 가지기보다는 그저 비난하려고만 하는 풍토가 사회 곳곳에 만연해있는 것 같다. 직장에서는 MZ세대 신입사원들의 행동이 기성세대와 비교되며 이들이 마치 사회부적응자인 것처럼 인식되고, 군대에서는 미숙함을 보이는 병사들이 ‘고문관’이나 ‘관심병사’로 칭해지며 소외되고, 길거리에는 아이들의 출입을 금지하며 그 부모들의 책임을 탓하는 ‘노키존존’이 등장하는 실정이다. 

 

이를 보고 있자면 사람들이 계속해서 누군가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 그들에게 비난과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거니와 이해하려는 일말의 시도조차 없다. 그저 그들의 실수와 잘못만을 부각시키며 모든 비판을 합리화한다. 이렇게 특정 대상을 향한 비난과 분노가 계속된다면 결국 우리 사회는 분열이란 종착지로 향할 것이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잘못에 화가 날 수 있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인의예지’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을 입증하는 ‘사단’(四端)이 있다고 했다. 이 중에는 “나의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이 포함된다. 맹자에 따르면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사단’에는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도 포함된다. 타인의 사정을 고려하며 안타깝게 여기고 따듯하게 용서하는 마음도 분명히 우리들의 본성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개개인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에 공감해주고 상대방의 실수와 잘못에 관대함을 베푸는 것은 우리 사회의 원동력이자 인간의 미덕이다. 여기서 관대함은 무조건 봐주자는 말이 아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정도를 벗어난 행위에 법으로 처벌을 내리는 것 또한 공존을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을 이해하려 하고 관용을 베푸는 단계를 가지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우리 사회에 관용이 필요한 것일까. 그 첫 번째 이유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AI처럼 무결점의 존재가 아니다. AI는 이미 학습된 데이터를 가지고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반면 우리 인간은 몸소 겪으면서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실수와 잘못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누구나 처음 시작하면 실수하기 마련이거니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듯 숙련된 사람도 언젠든지 실수와 잘못을 할 수 있다. 

 

또 인간은 이성과 합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가끔은 이성적이지 못한 판단을 할 수도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저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 누구든지 인간으로서 인생을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실수할 수도, 잘못할 수도 있는 여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모두들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과연 학교에 처음 갔을 때,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도로에서 운전을 해봤을 때, 처음으로 부모가 됐을 때, 우리 모두는 완벽했나? 그 어떤 실수나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나? 더불어 단 한 번도 그 어떠한 잘못된 선택도 하지 않고 항상 합리적이고 옳은 판단만 해온 사람이 존재할까? 법과 양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철인은 얼마나 될까? 자기 자신을 한 번 돌아보자. 아마 선뜻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저 사람이기에 모두가 실수하거나 잘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서로서로 조금 더 관대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그 두 번째 이유는 비난과 분노는 또 다른 비난과 분노를 낳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초보운전자로서 실수를 했는데, 도로 위 다른 모두가 당신에게 운전실력을 들먹이며 인격 모독을 가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나중에 과거의 자신처럼 운전에 미숙한 이를 만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우리는 성인 군자가 아니기에 아마도 비난과 분노를 서슴없이 표출할 것이다. 

 

반면 ‘초보운전’ 문구을 보고 다른 이들이 당신의 실수를 이해해주고, 각자의 초보운전 시절을 얘기하며 공감해주고 따듯하게 관용을 베푼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 또한 나중에 초보운전자를 봤을 때 그들의 미숙함을 이해해주고 그들의 실수에 관대해질 것이다. 관용과 이해심 또한 마찬가지로 또 다른 관용과 이해심을 낳는 법이다. 과연 우리네 삶이 비난과 분노라는 부정적 에너지로 가득 차는 것이 나을까, 관용과 이해심이라는 긍정적 에너지로 가득 차는 것이 나을까. 아마 정답이 정해진 질문일 것이다.  

 

필자가 마치 선민의식을 가진 양 대중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 또한 한낱 사람에 불과하며 때때로 타인의 실수에 화를 내고 싶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한낱 사람이기에 필자 또한 실수할 때가 잦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비난하려고 할 때 잠깐동안 스스로를 돌아본 후 타인의 사정을 이해하려 하고 관용을 베풀고자 노력하자는 것이다. 

 

사람들의 물질적 여유는 갈수록 늘어나는 듯 하나, 정서적 여유는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씁쓸하다. 보다 더 정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누군가의 실수에 차가운 비난보다는 따스한 관용을 베푸는 것이 어떠할까.  

작성 2023.10.17 09:41 수정 2023.10.17 11:05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광주루프탑카페 숲안에 문화복합공간 #로컬비즈니스탐험대 #우산동카페 #광주..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