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 칼럼] 잊는 게 힘이다

제5회 코스미안상 은상

[당선 소감]

 

감사합니다. 우리는 과도하게 잊지 못해 괴롭고, 과도하게 태우느라 들끓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다들 머리 식히고 사는 일을 소중히 하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변기가 고장 난 사실을 잊고 싶은 마음에 두 가지 글을 적은 거 같네요. 하하. 웃고 삽시다. 

 

동생 수민, 모친 김민주 여사, 그리고 항상 응원해주시는 이태훈 은사님께 무한한 감사를 보냅니다. 사랑합니다!

 

[제5회 코스미안상 은상] 잊는 게 힘이다

 

 ‘잊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 행여 내가 잊고 싶어도 나를 기억하는 세상이다. 각종 첨단 기술 발달로 ‘스마트 시대’에 사는 우리는 다양한 방식과 형식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기술을 훌륭히 성취했다. 물론 이전에도 기록하고 기억하는 수단은 인류에게 중요한 입지를 지녀왔다. 그러나 그때는 꼭 전해야 할 말만 써야 할 정도로 인류가 가진 자원은 한정적이었다. 

 

그만큼 정보의 밀도와 질이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무한해 보이는 자원과 공간 속, 많은 사람이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과다하게 노출되고 있다. 심지어 클라우드 및 인공지능 기술로, 절대 없어지지 않는 나의 디지털 흔적을 포함한 개인정보를 불시로 불특정 다수에게 누출하며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우리는 ‘잊는다’, ‘비운다’, ‘사라진다’와 같은 말을 가장 싫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즉, 과거의 잘못과 실수가 평생을 낙인으로 따라다녀 자칫하면 재기하기도 힘든 나락으로 삶을 내몰기 너무 쉬워진 세상이다.

 

사람 감각의 종류를 우리는 ‘오감’이라 일컫는다. 감각, 그것은 상(image, 像)을 감각기관을 통해 기억하는 것이라 우린 익히 알고 있다. 그럼 혹시 망감(忘感)이라는 말을 아는가? 인터넷에 검색해도 잘 안 나오는 거 보니, 그 이름답게 이미 많이 잊혔나 보다. 더 흔히 쓰이는 말로는 ‘망각’이라 한다. 망각이 ‘잊어버리는 감각’이라니. 처음엔 터무니없었지만 곱씹어보니, 이 말이 가진 역설적인 어감에 여운이 꽤 길었다.

 

동양철학에서 ‘잊는 감각’을 다룬 역사는 생각보다 꽤 길다. 혹자는 ‘잊는다’라는 감각에 무려 칠감(七感)이라는 이름과 개념을 부여할 만큼 ‘잊어버리는 감각’에 대해 권위를 실었다. 중국 장자의 허(虛)나 망(忘), 선불교 혜능의 무념(無念) 등이 그렇다. 오히려 기억보다는 망각에 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불교에서는 일찍이 무아지경(無我之境), 자아를 내려놓는 것이 우리가 불국토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자기 자신을 잊는 경지’ 말이다. ‘나’라는 존재를 망각한 체, 오로지 내 밖에 존재하는 타자와 마주치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좀 더 나은 삶이라는 가르침이다. 혜능이 말한 어떤 잡념과 망상이 일절 없는 상태, 무념무상(無念無想)도 이와 마찬가지 교훈이다.

 

동양뿐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아는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 대표 철학자,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그의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정신 단계를 낙타-사자-아이로 비유한다. 그리고 마지막 ‘아이’단계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단계이며 이 창조는 유쾌한 놀이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망각’할 줄 알아야 하며, 이를 거룩한 긍정이라고 니체는 예찬한다.

 

망각이 가진 힘은 냉소와 허무주의와는 그 맥락이 다르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만큼 잊고 살아야 생존에 유리하게끔 진화한 것이라는 일종의 수용이자 유쾌한 긍정의 힘이다. 현재와 미래를 알차게 채워가기 위해, 내 기억을 비우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한 성찰 작업이다. 컴퓨터도 저장 용량 관리가 기계 성능에 직결된다.

 

우리가 음식물을 소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음식이라는 형태로 입에 들어가서, 서서히 녹아 영양소와 에너지는 몸에 흡수되고 찌꺼기는 배설물 형태로 몸 밖으로 나가야 건강한 소화 아닌가? 사실 우리는 첨단기술 시대를 사는 대가로 ‘기억 소화불량’ 상태에 살아가는 저주에 단체로 걸린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우리가 망각의 힘을 점점 잊어 갈수록, 오히려 사회적으로 ‘절대 잊지 말자’라고 합의한 것들에 대해서는 갈수록 무감각해지고, 당장 처한 현실에 대해선 냉소와 허무만 일삼으며 서로를 ‘혐오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거 같아 매번 걱정이다. 매년 한국민의 자살률이 증가하는 통계를 볼 때마다 아찔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 과거를 되새김질하며 질책하고 후회하는 데에 쓰고 있다.

 

때가 되면 개인의 아픔과 상처는 어느 정도는 감내하며, 서서히 잊고 나아가야 한다. 애끓던 인연도, 언젠가는 잊어야 할 때가 온다. 그리고 나 자신조차 언젠가 사라진다. 사람으로부터, 삶으로부터, 그리고 우주로부터. 그래 우리 모두 잊힌다.

 

그러니 지나치게 바쁜 우리네 삶이지만, 용기를 내어 잠깐의 하늘 보기, 차 마시기, 날씨 좋은 날 공원 거닐기, 명상하기 등 잠시 멈추고, 과거에 매몰돼 지친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스스로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 과거로부터 이어진 나를 잠시 잊고, 앞으로 채워갈 나와 우연히 마주칠 타인에 대한 설렘을 만끽할 줄 아는 마음 근육을 키워보자. 그리고 자신에게 위로와 안녕을 건네보자. 우리 모두, 그럴 수 있었다고. 실수, 그거 누구나 한다고.

 

작성 2023.10.20 09:53 수정 2023.10.2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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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