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을 주면 사랑이 돌아오고, 미움을 주면 미움이 돌아오며, 선물은 씨앗처럼 가슴에 떨어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리라. 내가 죽어 땅속에 묻혀 흙이 되거나 불에 타 재가 되어 하늘로 증발해 나의 아니 우리 모두의 영원한 고향인 우주의 자궁 속으로 돌아간 다음에라도 말이어라.
우리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의 ‘예언자(The Prophet, 1923)가 베푼다는 것에 대해 하는 말 좀 들어보리라.
당신이 가진 것을 줄 때
이를 준다고 할 수 없고
당신 자신을 줄 때라야
참으로 주는 것이리오.
오늘 많이 모아 놓는 것
다 내일을 위해서라지만
아무런 자취도 남지 않는
세월이란 모래밭 속에다
재산이란 뼈를 묻어둔들
어디에 쓸 데 있으리오.
뭐가 모자랄까 걱정함이
다름 아닌 그 모자람이오.
우물에 샘이 넘치는데도
혹 목마를까 걱정이라면
그런 갈증 어찌 가시리오.
많은 것 갖고 있으면서도
남에게 주는 일 거의 없고
더러 좀 베푼다고 하더라도
생색을 내기 위해서라면
그 선심조차 욕될 것이오.
가진 것 별로 없어도
그래도 다 주는 사람
따뜻한 가슴 속에는
삶의 샘 넘쳐 흐르리.
기쁜 마음으로 주는 이
즐거움의 열매 거두지만
싫은 마음으로 주는 이
괴로운 가시넝쿨 뿐이리.
준다는 기쁨도 즐거움도
모르고 그저 베푸는 이
산골짜기에 피는 꽃들이
그 향기로운 숨 내쉬듯
그렇게 자연스러움이리.
참으로 너그러운 이에겐
받아 줄 사람 찾는 것이
더할 수 없는 기쁨이리.
세상에 아낄 것 무엇이오.
당신이 가진 것 모두 다
싫든 좋든 그 언젠가는
다 남겨 놓고 떠나는데
당신이 살아 주고 받는
삶의 기쁨 나눌 일이오.
당신이 세상 떠난 다음
벌어질 당신 유산 싸움
불씨 남겨 놓지 말리오.
때때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줄 만한 사람에게만 주고
받을 만한 사람만 받으리.
사람 봐 베풀라고 하지만
과수원에 있는 나무들과
풀밭의 젖소들과 양들은
그런 말 절대 안 하지요.
과일이고 우유고 털이고
가진 것 다 남에게 줘야
제가 사는 줄 잘 알지오.
끝내 지니고만 있다가는
썩어 없어지게 될 것을.
살아 숨 쉬면서 제 목숨
받아 누리는 사람이면
그 누구라도 그 뭣이든
떳떳이 받을 수 있으리.
저 큰 강물과 바닷물이
시냇물 다 받아들이듯.
우리가 주고 받는 것이
참으로는 우리 숨일 뿐.
날숨인가 하면 들숨이고
들숨인가 하면 날숨이리.
우리 모두 누구나가 다
사랑의 이슬 맺힌 삶을
받아 누리는 물방울들로
모든 것 다 내주는 땅과
끝도 한도 모르는 하늘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
우리의 넉넉함 나누리오.
“그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변명해준다거나 그의 행동을 용납한다는 게 아니고 당신이 더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과거지사로 돌려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을 말하는 거다. When I talk about forgiveness, I mean letting go, not excusing the other person or reconciling with them or condoning the behavior. Just letting go of your own suffering.”
“미국민의 20%가 굶주리고 세계 인구의 반이 영양실조인 상태에서 식물성 곡식을 더 섭취하고 동물성 지방질을 덜 섭취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위해서도 나은 일이다. At a time when 20% of people in the US go to bed hungry each night and almost 50% of the world's population is malnourished, choosing to eat more plant-based foods and less red meat is better for all of us-ourselves, our loved ones, and our planet.”
“진정한 힘은 우리에게 주어졌거나 아니면 우리가 창조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우리의 내적 평화와 가치와 행복을 깨달을 때 생기는 것이다. Real power is not given to us or even created; real power is realized. It comes from realizing an inner sense of peace, self-worth, and happiness.”
“건강이 나빠지는 건 당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고 당신이 이미 갖고 있는 걸 남용하고 악용하는데서 촉발되는 거다. 건강이란 당신이 얻어야 하는 게 아니고 당신이 이미 갖고 있는 걸 해치지 않는 일이다. Poor health is not caused by something you don't have; it's caused by disturbing something that you already have. Health is not something you need to get, it's something you have already if you don't disturb it.”
“우리 안에는 우리의 내적 스승, 안내인의 낮으나 분명한 목소리가 있지만 일상생활의 잡다한 잡음 때문에 우리가 듣지를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정신을 가다듬고 조용히 귀기울이면 무엇이 우리 자신을 위해 최선인지를 깨닫게 된다. We all have an inner teacher, an inner guide, an inner voice that speaks very clearly but usually not very loudly. That information can be drowned out by the chatter of the mind and the pressure of day-to-day events. But if we quiet down the mind, we can begin to hear what we're not paying attention to. We can find out what's right for us.”
“우린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는 걸. 그렇지만 그 누가 이 죽는다는 일을 생각하고 싶겠는가? 우리가 늘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삶의) 기쁨과 즐거움과 자유일 뿐이다. We all know we're going to die one day, but who wants to think about it? What's sustainable is joy, pleasure and freedom.”
“사랑과 친밀감이 우리를 병들게도 낫게도 한다. 약이나 섭생에 있어 금연한다거나 운동 부족이거나가 아니고 이 (사랑과 친밀감)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 게 있다는 걸 난 알지 못한다. Love and intimacy are at the root of what makes us sick and what makes us well...I am not aware of any other factor in medicine-not diet, not smoking, not exercise-that has a greater impact.”
“사랑과 친밀감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필요 요건이다. 음식과 물과 공기처럼 말이다. The need for love and intimacy is a fundamental human need, as primal as the need for food, water, and air.”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고 변화되는 걸 싫어할 뿐이다. People don't dislike change, they dislike being changed.”
“내가 영성(靈性)을 말할 때 나는 종교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든, 소아(小我/小宇宙)인 나를 대아(大我/大宇宙)인 나, 곧 온 우주와 연관 지어 주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When I use the word spirituality, I don't necessarily mean religion; I mean whatever it is that helps you feel connected to something that is larger than yourself.”
“일반적으로 나에게는 (뭔가를) 발견하는 과정 - 이를 내가 우리말로 바꿔보자면, 도(道) 닦는 과정) - 이, 그 어떤 해답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 I usually find that the process of discovery is more interesting than the answers.”
“삶의 기쁨은 지속가능하지만 죽음의 공포는 그렇지 않다. Joy of living is sustainable; fear of dying is not.”
“의미는 순응성(順應性)이 있다. 이 의미를 제거하면 남는 건 허무주의(虛無主義)와 절망(絶望)뿐이다. 하지만 의미를 되찾게 되면 (이를 내가 우리말로 달리 풀이해 코스미안으로서 우리 자신의) 그 어떤 특별한 성신성(聖身性/星神性)을 얻게 된다. Meaning is malleable: take it out, you get nihilism and despair. Put it in, you get sacredness and something most special.”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