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태양의 돌

이순영

예술은 혁명이다. 혁명을 통해서 예술은 창조된다. 그 창조된 예술로 우리는 세상을 본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즈텍문명의 후예들은 예술로 혁명하고 그 혁명으로 세상을 바꾸어가고 있다. 알 수 없는 끈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는 것 같은 그들과 우리의 정신적 연대 같은 느낌은 무엇일까. 인간 안에 있는 자연성을 모욕하지 않고 자연을 그대로 자신 안에 들여놓은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문명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인지 모를 안도감이 밀려온다. 그들에게 우리가 투영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시간의 마모에 저항하는 우리의 의지와 같은 맥을 지녔기 때문인지 모른다. 

 

태양의 돌을 아스테카 제국의 석조달력이다. 멕시코고원의 아스테카 왕국의 문명이 집약된 인디오들의 우주관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석조 건축물이다. 이 태양의 돌에는 인신 공양의 관습과 그림 문자와 역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무게가 25톤에 달하는 거대한 인디오 문화의 정수다. 아스테카 제국이 멸망한 이후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 한가운데 매장되어 있던 태양의 돌은 1521년 스페인에 의해 아스테카 제국이 멸망한 이후 1885년 스페인으로부터 멕시코가 독립한 이후에 발견되었다. 

 

우리에게 주역이 있다면 멕시코에는 태양의 돌이 있다. 돌 중앙에는 이 세상을 창조한 제5의 태양 토나티우가 혀를 내밀고 인간의 심장을 취하는 형상을 하고 있고 주위에는 과거 멸망한 4개의 시대인 재규어, 바람, 불의 비, 물이 박혀있다. 바깥쪽에는 아스테카 역의 날짜를 나타내는 20개의 상형문자가 있고 더 바깥쪽에는 새의 고리와 피의 고리, 태양광선의 고리가 있고 그 위에 불꽃과 뱀과 별과 금성이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아즈텍인들의 우주관과 종교관을 승화시킨 태양의 돌은 그 당시 철학의 혁명이었고 과학의 혁명이었다. 

 

나는 옥타비오 파스를 보면 만해가 생각난다.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 고독을 극복하는 진실이 보인다. 상투성으로 빛나는 삶조차 관조하는 그의 블랙유머를 보면 인생은 희극도 아니고 비극도 아닌 그냥 삶이라는 걸 깨우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옥타비오 파스를 좋아한다. 부조리 없는 세상이 어디 있을까. 모순 없는 세상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는 부조리와 모순을 시를 통해 은유로 까발린다. 속이 시원하다. 활명수를 먹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타성에 젖은 것들을 막 흔들어 깨운다. 흔들다가 일어나지 않으면 다 그만두는 세상인데 그는 일어날 때까지 흔들어 깨운다. 

 

오! 살아가기 위한 삶과 이미 살고 있는 삶,

하나의 큰 파도로 바뀌어 얼굴을

돌리지도 않고 물러나는 시간,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 지나가고 있다

이제 사라져가는 다른 순간에서

말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초석과 돌멩이의 오후

눈에 보이지 않는 칼들로 무장한 오후를 마주 보며

해독할 수 없는 붉은 문자 하나가

나의 피부에 글을 쓰고 그 상처들은

하나의 불꽃옷처럼 나를 덮는다,

나는 자신을 소멸함이 없이 불탄다, 나는 물을 찾는다,

이제 네 눈망울에는 물이 없다, 돌이 있다,

이제 네 가슴, 네 복부, 네 허리는 돌로 되어있다,

네 입에선 먼지맛이 난다,

네 입에선 썩어 버린 시간맛이 난다,

네 육체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우물이다,

 

이 시는 584행이나 되는 긴 시다. 태양의 돌에 금성과 태양의 움직임이 새겨져 있고 하늘이 움직이는 주기가 584일로 보고 있다. 거기서 영향을 받아 584행의 시로 표현했다. 북미 인디오들이 그러하듯 옥타비오 파스도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고 초현실주의도 경도되어 있었다. 또한 불교에 관심이 많아 인도 대사로 재직할 때 불교와 힌두교를 깊이 연구하기도 했다. “네 입에선 먼지맛이 난다, 네 입에선 썩어 버린 시간맛이 난다, 네 육체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우물이다”라며 이성의 폭력으로부터 인간해방을 부르짖고 있다. 

 

진보자들이 그랬듯이 옥타비오 파스도 한때 혁명에 매료되어 공화주의자들의 대의명분에 강한 공감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와 언어의 갈림길에서 그는 ‘언어의 혁명’을 선택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언어에게 원래의 본성을 찾아 줌으로써 근원적인 가치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혁명보다 언어다. 언어는 혁명보다 힘이 세다. 역사와 진보라는 미신보다 언어라는 인문을 택한 건 옥타비오 파스답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웹툰이나 유튜브가 사람들의 감성을 파고드는 시대다. 넘쳐나는 예술 플랫폼이 수없이 많지만 우리는 여전히 예술의 영역에서 ‘시’의 가치를 문명의 척도로 놓지 않을 수 없다. 시는 공간 축과 시간 축이 교차하는 곳에서 인간과 우주의 정념을 이해하도록 행간마다 깊은 뜻을 숨겨 놓았다. 

 

멕시코에서 1914년에 태어나 노벨 문학상을 받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시학 교수를 했으며 인도대사를 지낸 옥타비오 파스에게 ‘태양의 돌’은 유전자 깊이 각인된 응축되고 변형된 시간의 역사다. 그 시간에게 생명을 부여해 새롭게 숨 쉴 수 있게 했다. 시간에 맞서서 영원불멸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과 불멸은 죽음과 생성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넣고 오래도록 지속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실현한 것이다. 이상하게 아즈텍인들의 오랜 외침이 내 안으로 들어와 동명을 만들어 내는 까닭을 나는 알 수 없다. 그가 말했듯이 나도 “시간이 풀려져 내 영혼의 문들을 부순다.”

 

꿈에 대항하며 모질게 조각된,

이 밤의 허무, 글자글자마다

일어선 맥박을 뽑아 버린 순간만이,

한편 바깥에선 시간이 풀려져

내 영혼의 문들을 부순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3.11.02 10:48 수정 2023.11.0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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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