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생물도 사람의 말속에 담긴 감정을 과연 느낄 수 있는 걸까?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물이 사람의 말에 영향을 받는다고 여겨지는 실험 결과들을 접할 때면, 말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든다.
‘사랑해’, ‘고마워’ 같은 긍정의 말을 계속 들은 물과 ‘미워’, ‘싫어’, ‘짜증나’ 같은 부정의 말을 지속해 접한 물이 얼었을 때 그 결정체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그 비교 사진들을 보면 신비롭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간이 하는 말속의 생각들이 물에 전달되어 보석처럼 아름다운 모양의 결정체가 되기도 하고, 파괴적이며 미운 모양의 결정체가 됨을 보여준다. 물 파동 의학 전문가 에모토 마사루는 수십 년 전부터 이런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물에도 마음이 있고 표정이 있다고 역설했다. 과학계에서는 유사 과학 정도로 받아들인 듯하다. 인체는 물이 칠팔십 퍼센트 정도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니, 사람 또한 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성싶다.
이와 비슷한 실험들이 꽤 있다. 좋은 말을 들은 양파는 생기 있게 잘 자라지만, 미운 말을 들은 양파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빵이나 밥으로 하는 실험도 마찬가지다. 고운 말을 들은 빵이나 밥은 발효 냄새가 나는 데 반해, 나쁜 말을 들은 경우는 악취를 풍기며 더 빨리 검어지고 부패한다는 거다.
실험자들은 나머지 조건은 분명 똑같게 통제하였을 터이다. 이런 실험은 실제로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직접 확인해 보면 되기에 믿지 않을 이유가 없는 듯하다.
무생물인 물이나 밥, 식물인 양파의 실험 결과도 이러하니, 사람 간에 소통하는 말과 생각의 영향은 얼마나 더 클까 싶다. 꼭 이런 실험 결과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인생사에서 말을 포함한 생각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서로 따뜻한 말과 감정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건 삼척동자라도 알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때때로 잊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평소 불평불만이 잦은 친구가 있다.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남 탓을 주로 한다. 들어보면 이유가 다 그럴 만해 보인다. 젊어서는 선배들에게 불만이 있고, 나이 들어서는 젊은 후배들이 못마땅하다. 친구는 인간관계 운이 지지리 없는 걸까. 친구라고 편들어 주고 위로해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반복되니 답답할 때가 많다. 나름 다각도로 조언을 해주지만, 불평의 악순환 속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반면에 고마움만 두고두고 기억하는 지인도 있다. 오래전의 일임에도 당시 상황을 소환하여 감사 표현을 해 올 때면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을 법한 더 많은 기억들이 파생되어 부끄러워진다. 그러면서 주변인들에게 언제나 도움이 되는 진짜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일어나곤 한다.
딸이 아침 댓바람부터 툴툴거린다. 안 그래도 일이 많아서 바쁜데, 새로운 중요 업무까지 추가로 떠안게 된 속상한 심기를 호소한다. 조직 개편으로 팀에 중요한 새 업무가 추가되고 한 사람 증원되었는데, 새로 온 분이 중요 업무를 맡지 않겠다고 한 모양이다.
바쁜 아침이라 일단 출근을 한 뒤에 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매우 속상하지? 그분은 그분 나름의 고충이 있을 거야. 돕고 베푼다는 마음으로 이왕이면 웃으며 맡으면 어떨까?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 감사하고, 새로운 업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면 좋겠어.’ 딸로부터 기특한 답을 받았다. ‘응. 엄마. 더 바빠지겠지만 감사한 것만 생각할게요. 잘할 자신도 있어요. 고마워요.’ 감사와 배려의 기쁨을 경험했으면 싶었던 내 마음이 딸에게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아서 매우 감사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감사할수록 감사한 일이 되풀이되는 경험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건 아닐 게다. 학부모 중에 담임 복이 없다며 투덜대는 사람이 있다. 매년 마음에 들지 않는 선생님만 만난다는 그는 어찌 감사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겠는가. 같은 선생님을 두고 담임 복이 많다고 좋아하는 학부모도 있으니, 복이 있고 없고는 모두 본인의 몫이라 여겨진다. 같은 처지임에도 감사할 게 천지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감사할 게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감사할 게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복을 부르는 사람일 성싶다.
감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 있었으니, 나는 복이 많은 사람에 속한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수년 전, 유방암에 걸려 선 항암 후 수술 치료를 받았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암세포야, 고마워”라고 인사하였다. ‘나를 떠나 달라’는 부탁을 암세포가 잘 들어주리라 믿고, 하루도 빠짐없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콩알 크기로 작아지다가 쌀알 크기로 줄어들더니 항암 치료 중반기를 넘길 때쯤에는 멍울이 전혀 만져지지 않았다.
여덟 차례의 항암 치료를 모두 마치고 한 수술에서 암세포 여부를 검사하였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꿈인 듯하였다. 암세포가 흔적 없이 떠났음을 확인한 셈이다. “잘 있어. 영영 안녕”이란 인사가 내 귓가에 맴도는 듯 느꼈다. “나에게 왔다 간 암세포야, 영원한 작별 고마워. 잘 가.”
감사가 감사를 낳고 또 낳았다. 감사와 긍정의 힘으로 큰 병을 이겨낸 소중한 경험이다. 세상사에서 가장 위대한 가치가 무엇인지.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한 깨달음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감사는 파동으로 전파되며 막강한 에너지의 원천임을 더 많은 사람이 알아차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모두가 긍정적인 생각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행복은 주관적이라 여겨져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자신의 가치관에 달려 있으니, 누구라도 스스로 행복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밑바탕은 과연 무엇일까. 이 세상 모든 인간의 마음속 언저리에 그 무엇이 한 자리씩 꽉꽉 채워지면 더없이 좋겠다.
무생물이든 생물이든, 형체가 있든 없든 좋은 감정은 전달되고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내니, 우리 생활에서 긍정의 시너지 효과는 유사 과학이 아니라 선순환을 일으키는 진짜 과학으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매사 좋은 말, 좋은 생각, 작은 것도 감사할 줄 아는 긍정의 파장이 선순환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김태선]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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