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청초 우거진 골에

이순영

세상이 미쳤는지 내가 미쳤는지 모르겠다. 여자는 아직도 동물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암컷 운운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미쳐서 날뛰는 수컷들은 자신들의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입을 열고 뛰쳐나오는 언어조차 단속하지 못한다. 그래, 잘난 수컷들아 세상 이따위로 만들어 놓고 잠이 오더냐. 세상의 반인 여자들에게 그토록 적개심을 가졌다면 수컷들은 이미 진 게임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로봇이 진화해서 인간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21세기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질타를 해본 사람은 안다. 질타는 일종의 선물이다. 그 선물은 내적으로 역학관계를 형성한다. 질타는 질타를 받는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선물이 될 수 있다. 나쁜 감정의 포장지에 싸서 상대에게 던지는 것은 질타가 아니라 그냥 콤플렉스일 뿐이다. 질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은 그 안에 편견으로 가득한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다. 질타는 이기심을 배설하는 쓰레기통에 불과한 것이다. 여자들의 암흑기인 조선시대에도 대놓고 여자를 암컷이라고 조롱하지는 않았다. 죽은 여인의 무덤에 술 한 잔 올렸다고 탄핵당한 백호 임제가 무덤을 열고 벌떡 일어나 웃을 일이다. 

 

청초 우거진 산골짜기 무덤 속에 자고 있느냐, 누워있느냐

젊고 아름다운 얼굴을 어디에 두고 백골만 묻혀 있느냐

술잔을 잡고 권해 줄 사람이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남자라면 이쯤은 돼야 진정한 사내다. 여자든 남자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남자가 진짜 남자다. 임제는 황진이가 살아 있을 때 만나보길 기대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춤과 노래와 시와 그림에 능했던 종합예술인 황진이를 남들은 기생이라고 업신여겼지만 임제는 그렇지 않았다. 고위공무원인 그는 황진이를 기생이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 뛰어난 예술인으로 대했다. 마흔 살 무렵에 병사한 황진이의 무덤 앞에 그녀의 넋을 달래며 술 한 잔 올린 것이 탄핵당할 만큼의 큰 죄인 조선시대에 얼마나 큰 용기이며 인간애를 지닌 휴머니스트인가.

 

풀 우거진 산골짜기 무덤 속에서 자고 있는지 누워있는지 이미 가고 없는 그녀에게 물어보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다. 젊고 아름답고 어여쁜 얼굴은 어디에 두고 백골만 묻혀 있냐고 탄식한다. 그녀와 함께 어울려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음악에 취하고 춤에 취하고 시에 취하면 좋으련만 그녀는 이미 백골이 되었으니 이를 어찌 슬퍼하지 않겠냐고 혼잣말하면서 술잔에 술을 부어 올린다. 이 얼마나 파격적인 아름다움인가. 그 빌어먹을 벼슬 같은 거 없으면 어떠랴. 사랑을 모르고 풍류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인생인들 알겠는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자유롭게 마음 가는 데로 살면 좀 어떠랴. 

 

말을 꺼내면 나더러 미쳤다고 하고

입을 닫으면 나더러 바보라고 부르네

고개를 흔들며 가는 건 그 때문이지

어찌 알아주는 사람이 없겠는가

 

임제는 성이현과 헤어지며 이런 시를 남겼다. 말을 꺼내면 나를 미쳤다고 하고 입을 닫으면 나보고 바보라고 놀리는 그 엄혹한 시절에도 임제는 이런 시를 쓰며 사회를 조롱하고 시단을 풍요롭게 만든 시인이다. 그는 치열한 사람이었다. 자의식이 강하고 예술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세상을 비웃고 권력가를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하는 사람이었다. 뛰어난 무관이 되어 조선을 평정하려고 했던 그의 꿈은 사라져버렸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붕당정치로 썩을 대로 썩은 조선의 현실을 피해 명산을 찾아 떠돌면서 시를 짓고 마음을 닦으면서 살았다. 

 

“백호가 지은 시가 땅에 떨어질 때는 쇳소리가 났다. 그와는 헤어진 뒤에도 만나고 있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으니 좋은 밤에 밝은 달이 마음속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임제의 스승인 속리산 법주사의 대곡 성운 스님은 임제의 시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를 임제라고 부르지만 ‘임제’는 법호다. 당나라 혜조선사가 창제한 임제종에서 이름을 빌려 임제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불교에 깊이 관심을 둔 그였다. 그의 원래 이름은 ‘의현’이다. 1549년 12월 8일 전라도 나주목 회진리에서 병마절도사를 지낸 아버지 임지과 어머니 운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임제는 어려서부터 자유분방하고 거침이 없어 딱히 스승이 없었다. 그러다가 1570년 임제는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가는 길에 시를 썼는데 그가 쓴 시가 법주사에서 수행하고 있는 대곡 성운스님에게 전해졌다. 임제의 시를 알아본 성운스님과 그렇게 인연이 되어 임제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스승을 모시게 되었다.

 

수컷들아, 보고 있나. 임제의 이 호방함을, 진정한 휴머니즘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나. 뻔히 탄핵당할 줄 알면서 죽은 기생 앞에 술 한 잔 놓는 사나이의 기개를 보고 있느냐 말이다. 암컷 운운하며 여자의 위상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야 직성이 풀리는 수컷들아 임제의 통 큰 휴머니즘을 보고 배워라. 임제는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사람이었다. 

 

임제는 이 좁은 조선땅에 태어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당쟁만 일삼고 인간애가 없는 양반사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다. 공무원에서 탄핵을 당하고 나서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임제는 율곡, 허균, 양사언 등과 교류하며 정신적 세계를 넓혀나갔다. 임제는 조선이 중국의 속국과 같은 형태로 있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 아들에게 곡을 하지 말라고 했다.

 

“못난 나라에 태어나서 죽는 것이 무엇이 아깝겠는가. 너희들은 조금도 슬퍼할 것이 없다. 내가 죽거든 곡을 하지 마라”

 

임제는 1587년 서른아홉에 세상과 이별하고 말았다.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곧은 정신은 진정한 휴머니즘을 실현한 사람이다. 임제는 수컷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여자나 남자를 분별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사랑으로 사랑을 완성한 휴머니스트였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3.11.23 09:56 수정 2023.11.2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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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