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 칼럼] ‘님’ 문화 용어의 변화 시대

김관식

‘님’은 우리나라 시가에서 많이 등장한 시어였다. 우리나라 시가 문학에서 남녀 간의 사랑의 대상으로 님은 님에 대한 정과 사랑, 그리움 등을 주조로 한 것에서부터 고도의 플라토닉 사랑이라는 정신적인 가치를 반영한 ‘相思型(상사형)’의 시가와 육체적 욕망이 바탕이 되는 에로스적인 사랑을 반영한 ‘肉情型(육정형)’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상사형은 부재하는 님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의 감정을 담았고, 육정형은 현존하는 님과의 서로 사랑을 조건적으로 노래한 시가들이었다. 

 

지정학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 온 우리나라는 “사랑과 別恨(별한)의 대상으로서의 님”과 절대왕정의 봉건주의시대 “忠君至情(충군지정)이나 丹心(단심)의 대상으로서의 님”, 그리고 오늘날 존경의 대상이나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신 분들의 추모 대상으로 님은 시어로 사용하고 있으나 고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사랑과 별한의 대상으로서의 님이나 일제강점기 잃어버린 나라를 상징하는 님이라는 시어는 그 의미가 옛날과는 전혀 다르게 변질되어버렸다.

 

연정으로 대상으로 낭만적인 정서를 불러일으켰던 님은 물질주의 사상이 지배적인 오늘날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 구시대적인 용어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첨단 과학 문명의 발달로 시공간이 축소됨에 따른 사회문화적인 환경변화 때문일 것이다. 항공기의 발달로 세계 각국의 빈번한 왕래, 디지털시대의 대중매체와 통신기기의 발달로 인하여 원거리에 있는 사람과의 빈번한 소통문화는 떨어져 있어도 수시로 만남을 대체하는 첨단 과학 문명의 기기 덕분일 것이다. 

 

그나마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사람의 생각까지도 물질화되어 인간의 정서적 교류보다는 인간의 만남이 물질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한 수단적인 만남으로 대체됨에 따라 낭만적인 사랑의 감정을 유발하는 님은 이제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사라지는 전통과 파괴되어 버린 자연으로 대체되고 있다. 

 

만약 ‘님’을 향해 그립다거나 너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스토커로 처벌을 받게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철저하게 물질화되어 사랑이라는 관념적인 넋두리가 통용되지 않는 시대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님을 찾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사람은 과거 지향의 향수에 젖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시대가 변화되어버린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님’이라는 대상을 설정하고,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사랑과 이별의 대상으로서의 님’을 부르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양복을 입고 갓을 쓰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현대시의 기형적인 모습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현대시에서 ‘님’이라는 용어의 한계를 결정짓는 까닭이 바로 절대 왕정국가나 제국주의 시대에는 ‘충군지정이나 단심의 대상으로서의 님’을 문학작품 속에서 등장했으나 오늘날 민주주의가 활짝 개화된 시대이고 외국과의 교류와 왕래가 빈번한 시대에 ‘충군지정이나 단심으로서의 님’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현대시의 시어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습 독재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의 경우에는 아직도 이러한 ‘님’이 충성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상은 어디까지나 시대착오적인 특수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개인의 자유와 삶이 보장되고 있는 민주주의 시대에 절대왕정의 산물로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전체를 강조하는 ‘님’은 시대착오적인 정서일 것이며,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 대량소비시대에 모든 가치를 물질적인 가치로 수량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과 이별의 대상으로서의 님’은 존재할 가치의 정당성을 잃어버렸다.

 

그러함에도 굳이 ‘님’을 용어 사용의 정당한 경우를 예로 손꼽으라고 한다면, 지구상에 사라진 생물에 대한 생태학적인 상상력으로서의 ‘님’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무수한 생명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산업화로 인해 자연환경이 파괴되어 영원히 지구상에서 존재를 감춰버린 생물체들도 많다.

 

그러나, 사라질 위기에 직면한 생명체들을 천연기념물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지만, 지구온난화, 극심한 해양오염, 대기오염, 방사능오염 등으로 지구촌 전체 생명체들의 생존에 위협이 가해지고 있는 오늘날, 이미 사라진 생물에 대한 그리움이나 이별의 정서를 표출하는 시적 대상으로 ‘님’은 충분히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의 사회문화적인 현실에서 낭만주의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임이라는 용어는 사라졌고 다른 대체 용어로 변화되고 있다. 만해 한용운 시인은 “임의 침묵”이라는 시를 오늘의 시대에 맞게 패러디한다면, “임이란 시어는 갔습니다.//아아, 멋모르고 즐겨 쓰는 나의 시어는 갔습니다./ 푸른 그리움을 깨치고 낭송시를 읊어대던 시모임을 향하여/더 이상의 박수를 거절하고 갔습니다./황금의 물질을 같이 많이 벌자던 옛 맹세는/차디찬 조롱이 되어서 날아갔습니다./날카로운 평론가의 질책에 쓰린 고통은/나의 시세계의 지침을 돌려놓고 현대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로 ‘님’의 시어가 현대시에서는 존재할 이유의 상실성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님 용어의 문화는 ‘忠君至情(충군지정)이나 丹心(단심)의 대상으로서의 님’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전몰장병들이나 국가유공자들의 추도하거나 찬양하는 글에서나 등장할 수 있겠지만, 전체로서의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왕정시대의 용어로 쓰여 왔던 타자에 의존적인 ‘님’의 이미지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사회의 용어로는 부적합하다. 용어도 시대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현대에 와서 ‘님’이라는 말은 전통적인 우리 민족의 시가에 가장 많이 등장한 시어였다.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님’이라는 용어의 사용도 현대적인 변용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오늘날 물질주의 문명시대 윤리·도덕의 붕괴로 성의 상품화로 인간성의 상실을 부추기는 ‘님’의 용어는 저속한 화류계의 상징하거나 유행가 가사에서 등장할 용어가 이대로 우리 생활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사용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칫 남녀평등시대의 성차별과 야릇한 낭만주의적 과거 지향의 정서를 부추겨 절대왕정 시대 남성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등 남녀 차별문화와 낭만주의 정서의 환상을 낳는 님 문화의 재현은 민주주의 시대에 시대적인 조류에 맞지 않는 독재문화로 퇴행해버릴 개연성이 크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

 

작성 2023.11.27 10:11 수정 2023.11.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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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