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인간로드] 지혜의 왕 ‘솔로몬’

전명희

나는 삼천여 년 전 인간 ‘솔로몬’이다. 척박하지만 아름다운 예루살렘에서 아버지 다윗의 열 번째 아들이자 어머니 밧세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양치기 소년에서 이스라엘 2대 왕이 된 아버지 다윗이 나라를 잘 다스린 덕분에 나는 안정된 나라에서 유복한 삶을 누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왕자로써의 삶이 그렇듯이 언제나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꾸준히 무예를 연마했으며 백성들의 모범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열아홉 명이 넘는 형제들이 있는 왕가에서 나의 존재감이 특별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나는 다른 형제들보다 명석하고 지혜로워 사람들은 나를 잘 따랐다. 그러나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어야 했다.

 

나는 아버지 다윗이 총애하는 어머니 밧세바의 둘째 아들이지만 왕위 계승에 있어서 서열은 매우 낮았다. 첫째 형 암논은 셋째 압살롬의 칼에 살해당했고 둘째 길르앗은 요절했다. 그리고 셋째 압살롬은 무리하게 왕위 계승을 시도하다가 요압에게 살해당했다. 우리 형제 중에 왕위 계승 서열이 가장 높았던 넷째 아도니야의 배후에는 사령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있었다. 요압은 아버지 다윗의 전성기를 이끈 불세출의 명장이자 아버지의 정치 기반인 우다 지파 세력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버지 다윗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나에게도 지지자는 있었다. 제사장 사독과 근위대장 브나야가 나를 지지했지만, 제사장 사독은 넷째 형 아도니야를 지지하는 지체 높은 명문 제사장 아비아달과 견줄 수는 없었다. 또 근위대장 브나야는 군부의 수장인 요압과 대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넷째 형 아도니야는 이미 왕의 계승자가 된 것처럼 소를 잡아 제사를 올리며 형제들과 제사장 아비아달, 군사령관 요압을 초청했지만 나만 초청하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의 어머니 밧세바와 선지자 나탄은 나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아버지 다윗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끊임없이 노력했다. 어머니 밧세바를 매우 사랑했던 아버지 다윗은 어머니 밧세바에게 약속한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밧세바, 그대 몸에서 난 아들 솔로몬을 반드시 왕의 계승자가 되도록 할 것이다”

 

아버지 다윗은 어머니 밧세바와 대제사장 사독, 근위대장 브나야, 선지자 나단, 그리고 나를 불러들인 뒤 넷째 형 아도니야 일파가 손을 틀 틈도 주지 않고 직접 왕위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선지자 사단과 제사장 사독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는 절차를 밟고 아버지 다윗은 신하들 앞에서 나를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으로 임명하고 선포했다. 신하들은 뿔나팔을 불며 궁전이 떠나가도록 ‘솔로몬왕 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넷째 형 아도니야 일파는 한순간에 역적으로 몰려서 공중분해 되었다. 나는 지지자들을 규합해 정적을 제거해 나갔다. 

 

비로소 나의 시대가 왔다. 아버지 다윗이 예루살렘을 건설하고 군사, 경제적으로 성장시켜 놓은 바탕 위에 나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치를 혁신하고 사회를 혁신하여 더 나은 이스라엘을 만들겠노라고 다짐했다. 통치를 시작하고 제일 먼저 모세 때 만들어진 기브온 신당에서 하나님께 짐승 천 마리를 제물로 드리며 축복을 구했다. 그날 밤 나는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너에게 무엇을 주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백성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지혜를 달라고 대답했다. 나는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부흥시켜 잘사는 나라로 만들어 갔다.

 

부족제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을 12개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장관을 파견하고 세금이나 부역의 사무를 맡도록 했다. 세계 교역의 요충에 있는 점을 이용해 통행세를 거두어들이고 이집트, 페니키아, 아랍 등과 통상교역을 했다. 유브라데강에서부터 블레셋과 애굽에 이르는 주변 여러 나라와 관계를 맺으며 조공을 받아 금은 매해 666달란트나 되었다. 우리나라와 맹주에 있던 이집트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이 기회를 잡아 나의 통치를 더욱 공고하게 하고 이스라엘을 강국으로 만들 기틀을 잡았다. 

 

왕위에 오른 지 4년째 되던 해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 성전을 짓는 일은 아버지 다윗의 숙원이기도 했다. 성전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건축하기로 했다. 이곳을 성전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오르난에게서 이 땅을 사들이고 성전 건축에 필요한 금 10만 달란트와 은 100만 달란트 그리고 수많은 놋과 철까지 미리 준비해 두었다. 레바논산 백향목과 잣나무, 큰 돌을 들여오기 위해 일꾼 3만 명, 채석자 8만 명, 운반자 7만 명, 현장감독 3,300명을 레바논에 파견했다. 그렇게 7년 6개월의 공사 끝에 웅장한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되었다. 성전에 ‘계약의 궤’를 안치하여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성소로 만들었다. 

 

어느 날 재판관들이 판결하지 못한 사건을 나에게 가져왔다. 3일 간격으로 아기를 낳은 두 여인이 한 아기가 죽자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의 죽은 아기를 살아있는 아기와 바꿔치기했고 두 여인은 살아있는 아기가 자신의 아기라고 주장하며 다투다가 결론이 나지 않아 나에게 마지막 판결을 받으러 온 사건이었다. 나는 가만히 두 여인을 바라보았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모성을 이용해 금방 알아챌 방법이 떠올랐다. 엎드려 있는 두 여인 앞으로 나가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아이를 두 쪽으로 갈라서 반반씩 나누어 주도록 해라”

 

황당하기 짝이 없는 내 명령에 부하들은 어리둥절하면서 칼을 들어 아기를 두 쪽으로 가르려고 했다. 그러자 한 여인이 울면서 자기 아기가 아니니 제발 죽이지 말라고 소리쳤다. 나는 이 여인이 아기의 어머니라고 판결했다. 자신의 아기가 죽는데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었던 여인은 가짜 어머니가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판결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이웃 나라에까지 퍼져 나가면서 나의 명성은 더욱 높아져 갔다.

 

나는 국가를 번영시키기 위해 이웃 나라와 우호조약을 맺으면서 이집트 왕의 딸을 비롯해 많은 이교도 여자를 왕비로 맞이했다. 그러다 보니 아내 700명, 후실 300명에 이름도 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자식을 두었다. 모세의 율법에 우상을 섬기지 않도록 이교도들과의 혼인을 금지했는데 나는 이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 젊었을 때 신을 찾아야 했는데 너무 늦었다. 그렇다 나는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59세가 되던 해 나는 이 세상과 작별하고 말았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3.12.11 11:37 수정 2023.12.1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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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