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6시4

김태식

최근에는 휴대전화에도 시간이 표시되기도 하고 그 표시 방법이 대부분 숫자로 나타나므로 시간을 읽기가 아주 쉽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시계가 귀했고 시침과 분침이 있는 벽시계가 대부분이었기에 시간을 읽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3학년 2반 수업 시간에도 담임선생님께서는 열정적으로 시계 보는 방법을 가르치고 계셨다. 

 

설명을 다 하신 선생님은 우리 반 학생들 가운데 한 명 한 명을 지명하면서 시계 보는 방법을 질문하셨다. 그런데 시침이 가리키는 시간은 대부분 맞히는데 분침이 표시하는 분分은 계산이 조금 잘못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시침은 계산할 것 없이 숫자가 표시하는 대로 읽으면 된다. 그러나 큰 바늘이 나타내는 분은 분침의 숫자에 5를 곱해야 하고 다시 작은 눈금은 또 보태야 한다. 그 당시 우리의 나이에서는 결코 쉬운 계산은 아니었다. 

 

나의 차례가 된 나도 선생님의 질문에 가까스로 맞는 대답을 했다. 그때는 남녀의 비율이 비슷해서 남녀 짝으로 자리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다음 차례는 나의 짝이었다. 

 

“정OO, 선생님이 칠판에 그린 지금 시간은 몇 시 몇 분이예요?”

 

대답을 한참 미루던 내 짝은

 

“네. 6시4입니다.”

 

교실 안은 폭소가 쏟아졌다. 우려했던 대로 작은 바늘의 시침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큰 바늘의 분침에 부딪혔고 나의 짝에게는 무척 어려웠던 것이다. 나의 짝이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내가 일러 주었다. 시간은 6시이고 분침이 4에 있으니 5를 곱하면 20분이니 6시 20분이라고 하면 된다고 했는데도 깜빡하고 그만 앞의 4라는 숫자만 보고 ‘6시4’라고 대답해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5를 곱하고 어쩌고라는 말이 필요 없이 그냥 ‘6시 20분’이라고만 얘기했으면 되었을 걸 하고 후회가 된다. 

 

6시4라고 대답한 ‘정OO’는 본래 나의 짝이 아니었다. 담임선생님의 부탁으로 본래의 내 짝과 바꾼 것이었다. 이 짝은 우리 반의 모든 남학생들이 짝을 하기를 거부하는 여학생이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는 아이였고, 늘 떨어진 옷을 입고 학교에 왔다. 머리에는 이가 많았으며 준비물은 언제나 챙겨오지 않는 아이였다. 게다가 얼굴도 깨끗하지 않았다. 그 당시 대부분의 시골 가정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부모 없이 살아가는 그 아이는 더욱 힘든 것이 엿보였다. 어느 날 나의 담임선생님께서 말했다.

 

“너는 공부도 좀 하는 편이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니 ‘정OO’하고 같은 책상에 좀 앉아주지 않으련?”

 

나도 어린 나이인지라 싫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얼떨결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던 모양이다. 그때의 기억으로는 선생님께서 교육적인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 같다. 요즈음 말로 하자면 왕따인 그 학생을 그대로 방치하면 더욱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따라서 내가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나에게 부탁을 하셨을 것이다. 

 

선생님은 덧붙여 ‘정OO’의 수업성취도가 많이 떨어지니 짝을 하면서 공부도 좀 가르쳐 주라고 하셨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내가 무슨 철이 들어 있었겠는가? 나의 앞가림이나 겨우 할 정도의 나이였는데. 

 

그런 일이 있고부터 ‘6시4’는 내 짝의 별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내 짝의 별명을 부르며 놀릴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내게 특별히 부탁해서 짝이 되었고 내 짝이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동급생인 나에게 물어보는데 어떻게 나마저 그녀의 별명을 부르며 놀림감으로 삼을 수 있었겠는가?

 

나의 짝이었던 ‘정OO’와 4학년부터 남녀 구분을 하는 반이 편성되기 때문에 다른 반이 되었다. 그 당시 중학교도 입학시험을 거쳐서 갔는데 남학생이나 여학생이나 통영에는 중학교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중학교 진학하기가 아주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쉽게 갈 수도 없었다. 

 

내가 4학년 이후부터 학교에서 그 짝을 스쳐 지나면서 잠시 보았을 뿐 만난 적이 없으니 소식을 모른다. 다만 그 당시 친구들에게서 들은 얘기에 의하면 나의 짝은 학업성적도 뒤떨어졌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고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한다고 했다. 

 

나는 요즘도 손목시계를 보면 ‘6시4’라는 기억이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친다. ‘6시4’가 그때의 반 아이들에게는 웃음거리였지만 내 짝의 상처는 컸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쯤 그 짝은 ‘6시4’를 세월에 날려 보내고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3.12.12 10:07 수정 2023.12.1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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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