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은 무진기행으로 잘 알려진 김승옥(1941~ ) 작가의 초단편 모음집인 '가짜와 진짜'에 수록된 아주 짧은 단편이다. 짧은 분량으로 작품의 완결성과 주제 의식을 동시에 담은 작가의 탁월함을 보여준 작품이다. 작품을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남편이 죽기 전 남기고 간 편지를 크리스마스에 큰딸로부터 건네받은 아내의 이야기이다.
어느 크리스마스이브, 이불 속에서 한마디씩 하는 세 아이를 재우며 불을 꺼주고 거실로 나온 주인공 정애, 쪽마루를 깐 세 평 정도의 공간에 연탄난로까지 피워놓았으나 산 중턱에 북향으로 자리 잡은 그녀의 집 거실은 겨우내 추위에 시달려야 한다. 쪽마루를 깐 세 어둠 속에서 혼자 있는 것이 최근의 버릇이 된 정애는 추운데 빨리 들어오라는 남편의 음성이 들려올 것 같은 기대로 잠깐 가슴이 벅찼으나 이제는 그 음성을 이젠 영원히 들을 수 없다는 현실로 돌아와 뜨거운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아직 잠들지 않았을 아이들에게 울음소리가 들릴까 봐 손으로 입을 막고, 아이들 방의 연탄을 갈 생각, 감춰둔 크리스마스 선물을 꺼내어 아이들의 머리맡에 놔줄 생각을 한다.
정애가 마당의 어둠 속으로 내려서자 눈발이 날리고 가슴이 더욱 싸늘해지자 차가운 공원묘지에 혼자 누워 있는 남편에 대한 연민에 또 운다. 연탄불을 갈고 거실로 돌아왔을 때 뜻밖에도 형광등이 켜져 있다. 소파 앞의 탁자 위에 커다랗고 흰 사각봉투가 놓여 있고, 정애는 아이 들이 자신에게 주는 크리스마스카드인 모양이라고 짐작하며 집어 들다가 몸이 굳어진다. 겉봉에 분명히 남편 글씨로 '사랑하는 아내에게'라고 씌어 있었기 때문이다.
봉투를 뜯으니 글씨는 남편의 글씨가 아니었다. 아픈 남편이 죽음을 앞두고 간호사를 통해 대필한 편지였다. 그동안 여행 한 번 함께 제대로 하지 못한 미안함과 크리스마스마저도 즐겁게 보내지 못하고 TV나 보고 낮잠이나 자던 것에 대한 후회, 죽어서도 항상 아내와 아이 들을 지켜보고 있겠다는 이야기, 그리고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라는 것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것 등의 내용이었다.
누가 편지를 갖다 놓았냐고 묻자 큰딸이 이불 밖으로 눈물 자국 있는 얼굴을 내밀며 아빠가 병원에 있을 때 크리스마스 날 엄마 주라고 맡겼다고 한다. 정애는 아빠가 우리 얘기를 다 들으면서 지금 우리하고 함께 있다고 울지 말라고 아이에게 말한다. 그리고 처음 맛보는 행복감으로 눈물과 미소를 한꺼번에 지어 남편에게 보였다.
오 헨리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나는 단편이다. 오 헨리 작품의 부부는 살아 있는 부부의 사랑이고 이 작품은 죽은 남편과의 사랑이다. 남편은 시계를 팔아서 아내의 머리띠를 샀고 아내는 머리를 잘라 팔아 남편의 시계 줄을 산다. 그러나 결국은 쓸모없게 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지만, 오히려 서로에게 더한 고마움을 느끼게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내놓는 것이다.
이 작품 속의 정애는 남편으로부터 무슨 선물을 받았을까. 바로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라는 선물을 받는다. 그래서 언젠가 천국에서 가족이 함께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주면서 말이다.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를 맞으며 죽은 남편을 그리는 정애에게 생전에 쓴 편지를 받으며 받은 사랑의 위로는 앞으로 주인공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작품은 서로 곁에 있을 때 후회 없이 남편과 아내,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충실할 것을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사랑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신성한 의식과도 같은 것임을 말해준다. 물질이 모든 것을 덮고 지배하는 세상, 사랑하지만 결혼하지 못하는 청춘들도 많고, 생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만족스럽게 해결되어야 하는 조건을 보고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백 년도 못사는 세상이고 또, 어찌 보면 백 년이나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둘만의 세상이 아닌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와 사람 노릇의 시작으로 어떻게 책임과 의무를 수행할 것인가와 맞물리기에 결혼을 할 것인지,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이 모두가 스스로에게 주어진 선택과 책임의 문제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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