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나의 고향초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으로 근무할 때 3명의 일본 여비서 중에 색소폰 연주를 아주 잘하는 직원이 있었다. 일본에서 여비서는 나에게 색소폰 배우기를 권했고 여비서의 도움으로 기초를 잠시 배웠다.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여 오랫동안 잊고 살다가 어느 날 색소폰 음표를 다시 짚었다.

 

지도해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해운대 달맞이 고갯길에서 삑삑거리며 듣기 거북한 금속음 부딪는 소리를 내고 있을 때쯤이었다. 서툴기 짝이 없는 도레미파를 한참 짚던 날이 여러 번 지나고 있던 어느 봄날에 산책을 하시던 8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셨다. 

 

“젊은 양반 나에게 ‘고향초’ 노래를 한 곡 연주해 줄 수 있겠소?”

 

라며 말을 건네시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만 들으신 바와 같이 저는 이제 도레미를 연습하느라 음표를 겨우 짚고 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이 지나 저의 색소폰 연습이 어느 정도 되면 꼭 고향초를 연주하겠다는 약속에 그 할머니의 얘기는 이어졌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의 일이군요. 내 나이 14살이었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에 서울에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대학생 청년이 방학 때 우리 마을에 오면 고향초 노래를 가르쳐 주었지요. 잘 생겼던 그 총각은 친절하게 노래를 가르쳐 주며 노래도 곧잘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한민국에는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진 허리를 공산주의 이념으로 맞춤하겠다 하고 다른 한쪽은 그럴 수 없다는 서로의 뜻을 굽히지 않은 채 전쟁을 선택하고 말았지. 남과 북은 죽음을 불사하고 난리 속에 휘말리게 되었고 젊은 남자들은 교복 대신 군복으로 갈아입어야 했지. 

 

그 청년도 예외는 아니었다네. 그 청년은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하늘이 무너지는 듯 땅이 꺼지는 듯 나는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오. 그 이후 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그 청년이 생각날 때면 시간이 나는 대로 홀로 교실에 남아 풍금으로 고향초를 더듬었지”

 

할머니는 얘기를 끝낸 뒤 손수건을 꺼내고 있었다. 나는 그 노래의 사연을 듣고 색소폰 연주가 어느 정도 된다고 여겨졌을 때 가장 먼저 배운 연주곡이 바로 고향초가 되었다. 그 이후 고향초를 연주해 달라던 할머니를 다시 만난 적은 없다.

 

남쪽 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날으며 

뒷동산에 동백꽃도 곱게 피는데

뽕을 따는 아가씨들 서울로 가네

정든 사람 정든 고향 잊었단 말이냐

 

할머니의 첫사랑이었을지도 모를 그 청년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이름 모를 조국 산하에서 나라를 지키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던 것이다. 남쪽 나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 채.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3.12.26 11:13 수정 2023.12.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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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