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이태준 단편 '아무 일도 없소'에서 보는 지금 우리에게 진짜 아무 일도 없나

민병식

상허 이태준 선생은 1904년 강원도 철원 출생으로 1933년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39년에는 ‘문장’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1946년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바 있고 1952년 사상검토를 당하고 1956년 숙청당했다. 작가의 초기 작품인 이 소설은 원래 ‘불도 나지 안었소, 도적도 나지 안었소, 아무 일도 없소’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작품이었으나 후에 단행본인 ‘아무 일도 없소’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M 잡지사의 편집회의에서 눈에 번쩍 뜨이는 ‘에로’ 제목 하나를 넣으면 몇천 권은 더 팔릴 거라는 등 의견이 나오고 편집국장이 ‘신춘 에로 백경집’을 만들자고 한다. K 기자는 편집국장의 명령을 받고 취재를 위해 유곽으로 가게 되는데, 난생 처음 그런 곳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몹시 긴장되어 술을 마신다. 

 

‘에로’의 재료를 찾아 나서야 하는 것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나 밀린 방세 문제로 방을 비워 달라던 주인아주머니가 그가 취직되었다고 한 후 갑자기 상냥해진 것, 석 달 치 밥값이 밀려 있고 닳아빠진 구두 굽을 생각할 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더구나 편집국장은 그를 따로 불러 문학청년 따위의 ‘쎈치멘탈’로는 실패한다는 주의를 단단히 준다. K는 센세이셔널한 ‘에로’를 취재하여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켜야겠다는 생각에 가득 차 어두컴컴하고 쌀쌀한 병목정 거리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올라간다.

 

그는 유곽에서 창녀들 속에 15살 전후의 어린 소녀들이 많은 것에 놀란다. 성적 흥분을 느끼기보다 측은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편집국장의 센치멘탈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떠올리고 유곽의 창녀가 하라는 대로 한다. 그러나 서슴없이 저고리를 벗는 여자의 나이 어림을 보고 놀라고 그녀에게 나이를 물어볼 용기 없이 1원짜리 한 장을 빼어 놓고 그대로 나온다. 

 

유곽을 도망 나온 K는 근처의 어두운 골목, 남의 집 담장 밑에서 몰래 몸을 파는 창녀 한 명을 또 발견하고 그 뒤를 쫓아간다. K를 유혹하던 그녀는 일제시대 이전에 충청도 서산 어느 지역 사또의 딸이었는데 그녀가 어머니가 사망하여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길거리를 나섰다는 사유를 듣는다. k는 얼마 안 되는 돈을 주고 서둘러 그녀의 집에서 뛰쳐나온다. 어디선지 야경꾼의 딱딱 소리만이 아무 일도 없소’하는 듯이 몰려온다.

 

작품은 일제 치하에서 힘들고 고달픈 서민들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여러 가지 힘들고 고달픈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지식인인 주인공 '나'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세상을 아픈 이들을 외면하고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역설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군사독재 시대를 민주화의 시대로 바꾸고 지금의 선진국으로 일어선 대한민국, 2023년이 지나가는 즈음 자랑스런 선진국 대한민국을 돌아보면 생활고에 시달린 어느 가족과 고립, 은둔 청년의 자살, 취업의 어려움, 노인의 빈곤 등이 뉴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이 안중에도 없는 위정자들은 패거리를 나누어 서로 싸우기에 여념이 없고 자신의 편을 비호하기에 바쁘다. 사회적 약자를 위하던 무료급식소와 연탄 봉사 등 후원은 예전에 비해 턱없이 후원이 줄어들고 있다.

 

지금 나에게 당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진짜 아무 일도 없는 것인가. 2023년 1월에는 아프고 힘든 일 말고 서로 보듬고 서로 사랑하며 희망으로 가득한 함께의 세상이 되자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사회에서 일가족 자살, 장래가 창창한 청년의 죽음 등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나면 모든 사람이 공분한다. 그러나 공분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는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다. 복지국가의 새로운 과제는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공동체 정신이다. 국가에게만 맡기고 의지할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생활의 안전판이 되어야 할 시점이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이메일 :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3.12.27 11:25 수정 2023.12.2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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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