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주나 보면서 쉬세요. 보구 싶지 않습니다.”
어느 인터넷 신문의, 대통령 선거 투표와 관련된 기사에 달린 짤막한 댓글이다. 이 문장들을 보면서 ‘∼구’ ‘∼구’ ‘~구’, 닭이나 내는 소리를 인간들이 어찌 그리도 애용하는지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싶어 흐흐 실소가 나온다. 그러면서 그 한두 마디가 우리말의 오염 현상에 대해 다시금 곰곰이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국어 문법에는 모음조화 규정이 있다.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모음조화란 “두 음절 이상의 단어에서 뒤 음절의 모음이 앞 음절 모음의 영향을 받아 그와 같거나 가까운 소리로 되는 언어 현상”이라고 풀이가 되어 있다. 이를테면 자음은 자음끼리, 모음은 모음끼리 서로 강한 결속력을 갖고 친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이론이다.
이 문법 규정은 지금 시대착오적인 이론으로 전락해 가는 중이다. 모음조화 현상이 아니라 ‘모음부조화 현상’이라고 해야 오히려 맞을 성싶은 상황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우리말의 모음조화 파괴 현상은 요즈음 거의 일상화되었다. 위의 사례에서처럼, 손자와 손주의 경우를 놓고 보아도 그렇다. 지난날엔 ‘손자’만 표준어이고 ‘손주’는 서울 지역에서 사용하는 사투리였다. 그랬던 것이, 사람들이 ‘손자’ 대신에 너도나도 자꾸 ‘손주’, ‘손주’ 하다 보니 급기야 국립국어원에서 손주도 표준말로 인정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왜 당연히 ‘ㅗ’를 써야 할 자리에 한사코 ‘ㅜ’를 쓰는지 그 이유를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예의 “보구 싶지 않습니다.”에서 보듯 이제는 모든 ㅗ가 ㅜ 하나로 통일되어 가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습관적으로 ‘삼촌’을 ‘삼춘’이라고 부른다든가 ‘사돈’을 ‘사둔’으로 발음하듯, ‘보고 싶다’ 대신 ‘보구 싶다’를 자꾸 쓰면 이것도 나중에 가서 결국 올바른 표현으로 인정해 버리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하고요’, ‘∼라고요’ 하는 말들의 경우도 그렇다. 서울 사람들은 이 말을 하나같이 그들의 사투리인 “∼하구요”, “∼라구요”라고 발음한다. 지방 사람들 가운데는 서울말에 대하여 은근한 부러움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아니, 무조건적인 추종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서울 사람들이 이렇게 쓰니 그게 뭐 그리 멋스러워 보인다고, 억양은 전혀 서울말 분위기가 아니면서 어설프게 서울 사람 흉내를 내느라 말끝마다 “~하구요”, “∼어쩌구저쩌구요” 해댄다.
특히 이삼십 대, 그 가운데서도 젊은 여자들 가운데서 이런 말버릇이 더욱 심한 성싶다. 상황이 이러하고 보니 이 ‘∼고요’ 역시 장차 ‘∼구요’로 표준말 규정이 바뀌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상황에서 모음조화 현상이라는 법칙이 뭣 때문에 필요할 것인지 관계자에게 한번 정중히 물어보고 싶다.
국립국어원이라는 곳은 어찌 그리도 줏대가 없는 기관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잘못된 낱말이나 비문법적인 표현을 쓰면 그걸 바로잡아 줄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시대적인 추세가 어떠니 저떠니를 들먹이며 따라야 한다는 취지로 무책임하게 표준어 규정부터 바꾸어버리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자꾸 이럴 바에야 그런 기관은 차라리 존재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말무리들도 또 그렇다. 위의 사례들에서처럼 당연히 ‘ㅗ’를 써야 할 자리에 남이 ‘ㅜ’를 쓰면 그것이 바르지 못한 표현임을 깨닫고 자기는 쓰지 말아야 할 것이거늘, 그게 무슨 있어 보이는 표현이라고 줏대 없이 따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이해 불가한 일이다.
혹여 자신이 남과 생각이나 처지가 같다는 뜻을 표할 때조차 ‘나도’가 아닌 ‘나두’라고 발음하는 것에서 나름대로 그 답을 유추해 볼 수는 있으려나. 하여간, 이러다가는 먼 훗날 결국 ‘ㅗ’가 들어가 있는 모든 낱말에 ㅗ 모음은 사라지고 ㅜ 모음만 남게 되리라는 성급한 예감마저 든다.
우리말의 오염 현상이 시간이 흐를수록 도를 더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오지랖 넓게 한마디 해 보는 소리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