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탈진 뙈기밭에 아낙들이 따개비처럼 붙어 있다.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 한낮도 아랑곳없이 김매기에 열심이다. 시간도, 공간도 흐름을 멈춘 듯 바르비종파의 어느 화가가 그린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둥글게 몸을 말아 바닥에 웅크리고 호미 쥔 손으로 후비적후비적 땅을 긁으며 늙은 오리걸음을 한다.
호미 놀림이 날래고 능수능란하다. 몸 일부분처럼 유연하고 자연스러워 천의무봉의 재주를 부리는 것 같다. 잡다한 풀뿌리들은 흙투성이 맨손으로 뒷정리하느라 덩달아 바쁘다. 머릿수건 동여맨 이맛살에 석류알 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려도 일삼아 훔쳐낼 겨를이 없다. 밭이랑을 자식새끼처럼 끌어안고 양육하는 아낙들 머리 위로 구름 한 자밤 햇살을 가려주며 지나간다.
흙을 파고, 긁고, 무두질하듯 북을 돋운다. 가뭄에 가려웠던 지표를 등긁이처럼 헤집어놓으면 땅속 임자들은 혼비백산이다. 뛰고, 구르고, 더 깊이 파고들며 순식간에 흩어진다. 싹트는 풋것들의 자궁으로부터 따스한 신음 소리 들려오고 땅이 발효되는 훗훗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쟁쟁한 햇살의 알갱이들이 땅속에 침잠해 있던 습한 외로움을 달래는 사이 어디선가 갓 쪄낸 옥수수 냄새가 풍겨온다.
호미를 눈으로 품어본다. 사마귀처럼 날씬하면서도 유려한 몸태를 가진 반물빛이다. 가냘픈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잎새처럼 쇠 날의 역학적 구조는 달빛 아래 수줍어 고개를 살짝 비튼 여인네의 목선을 닮았다. 날과 손잡이의 은근하고 대담한 곡선이 버선 수눅선같이 멋스럽고 매력적이다. 팔뚝 길이도 안 될 만큼 단아하지만, 한편으론 세상 무서운 것도 없다는 듯 강단 있는 모습이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중량감, 손안에 노는 무게중심, 착 감겨오는 손잡이의 감촉이 여자들의 농기구로 안성맞춤이다. 온몸을 이완시켜 팔뚝의 무게를 손가락에 실어내는 운궁법이라도 익힌 것일까. 남자의 완력이나 중력은 없어도 알맞게 당기는 힘 하나로 세상의 모든 생명을 심고, 키우고, 꽃피운다.
새싹의 형상이고 생명력의 상징이다. 안에서 밖으로 내치는 적 없이 밖에서 안으로 움켜서 그러모아 대지를 품 안에 거둔다. 캄캄한 밤길을 여는 등불이고 마른논에 물꼬를 트는 척후병이다. 땅속을 누비는 마술사처럼 호미가 닿는 곳마다 길이 생겨나고 바람이 들썩인다. 부드러운 손길로 땅을 보듬고 달래는 사이 씨앗은 보금자리 만들고 열매는 속살을 살찌운다.
가시적이거나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맨땅을 힘껏 내리치거나 깊숙이 파고들지도 못하고 낫처럼 무엇이든 섬뜩 베어본 적도 없다. 남보다 앞서지도 못하고 무슨 일을 해도 눈에 띄지도 않는다. 쪼그려 앉아야 하는 작업은 허리가 끊어질 듯 힘들고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일처럼 그저 한 걸음씩 쉬지 않고 앞으로 내딛는 방법뿐이다. 어쩌면 대장간 모루 위에서 담금질 될 때부터 예견된 인생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적 없는 폐가가 마을에 드문드문하다. 무너진 담장 곁에 홍자색 싸리나무꽃들이 총상화서로 애처롭게 피었다. 어느 외진 허청에 대 끊긴 유산처럼 호미 하나 덩그러니 걸려있다. 주인이 누구였는지, 물살에 제 살을 깎인 몽돌처럼 쇠 날은 닳아 뭉툭하고 손잡이는 낡아 푸석하다. 새척지근한 땀내가 댓잎 그림자처럼 흔연히 지나간다. 저 작은 호미 하나가 삶의 전부이고, 생(生)을 버텨낸 유일한 무기였을 어느 여인의 생애가 읽힌다.
그녀도 보릿고개를 견뎌내고 생떼 같은 식구들 목숨을 거두느라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 식구 배불리 먹일 수 있을까, 거품을 물고 일터에서 돌아와 다 헐은 혓바닥으로 송아지를 핥아주던 어미 소처럼 그저 가세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수고하고 희생하였을 것이다. 쓰고, 짜고, 매운맛은 자신이 삼키고 자식들에게는 온전히 단맛만 물려주려고 꼬부라질 듯 동그라미가 된 몸으로도 호미를 손에서 놓지 못하였을 것이다.
본때 없는 가난은 질기고도 지루했으리라. 송곳 꽂을 땅도 없는 궁핍 속에서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내야 했을 것이다. 손에는 호미가 갈퀴손처럼 매달려 눈길 가는 곳마다 후벼대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빈 땅이라면 무텅이나 부룩까지 해서라도 곡식 한 톨이라도 더 수확하려고 억척스러웠을 것이다. 여자로서 누려야 할 행복과 유열이라는 게 따로 있었을까. 앉으나 서나 일밖에 모르는 지난한 삶에 지친 몸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는 날들이었으리라.
호미질하다가 냅다 내동댕이쳐버리고 싶은 날도 있고, 때로는 하늘에다 호미를 휘두르며 세상의 도린곁을 따져보고 싶지는 않았을까. 허우룩한 빈속에 맹물 같은 한숨을 내쉬다가도 그때마다 삶의 방편 또한 이 땅밖에 없음을 알고 밭머리건 논두렁이건 붙박이처럼 매달렸으리라. 허구한 날 가슴이 타고 등뼈가 휘는 날들이었지만 그 고통마저도 낙으로 삼아 잡초처럼 끈질기게 땅을 움켜쥐고 일어섰을 것이다.
호미를 거머쥔 그 여인들의 손이 우리를 존재하게 한 원천적인 힘이 아니었을까. 손톱도 뭉개지고 나무껍질같이 거칠어졌지만 어떤 씨앗이든지 잘도 싹틔우고 싱싱한 열매를 맺게 하는 마법의 손이었다. 흙의 습성과 기운을 잘 알고 비와 바람, 햇빛과 교감하며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드는 신비의 손이었다. 흙내와 퇴비 냄새가 온몸에 켜켜이 배였지만 세상 무엇이든 망설이거나 피하지도, 두려워하거나 더러워하지도 않고 생명의 물터를 잉태한 거룩한 손이었다.
만추의 낙엽 하나가 그 메마른 무게로 계절을 바꾸었듯이 작고 가벼운 호미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를 지녔다. 녹진한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살이 빠져나간 자리에 쇠골이 깊어졌지만 그들의 세상은 특별하고 위대했다. 오장육부를 떼어주고 뼈를 갈아 자식 몸에 붙여주느라 닳고 닳아 조막손 같은 정물화로 남은 호미, 이 땅의 여인들이 살아온 이력서이고 삶의 얼굴이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서야 석고처럼 굳어버린 허리를 붙잡고 아낙들이 하나둘 밭고랑을 걸어 나온다. 서 있는 것이 죄이기라도 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빈터마다 후비적대는 호미질은 여전하다. 풀어낸 머릿수건 사이로 순박한 웃음이 육덕지고, 석양에 길들여진 걸음걸이가 풀벌레 울음에 풍요하다.
시골도 점점 도시화, 현대화되어간다. 밭일하는 아낙들도 늙수그레한 노인들뿐이다. 아릿한 슬픔의 여운이 의문형의 입자가 되어 안개처럼 불현듯 몰려온다. 저 계절이 끝나면 호미를 든 저 여인들도 가뭇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초가지붕 위의 박덩굴이나 탱자나무 울타리처럼 서정시 같은 자연 하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아쉬움이다.
쉽고 편한 것만 쫓는 세상이다. 손에 흙 묻히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농사가 일확천금이나 인생 역전을 꿈꾸는 돈벌이가 되지도 않는다. 영농이 날로 과학화, 기계화되어 예전보다 훨씬 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노동력이나 생산성과 관계되는 일일 뿐, 사랑과 정성이 바탕체인 호미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땅이 죽으면 사람이 죽는다는 생각으로 그저 해마다 농사일이 물레방아처럼 습성화된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진정 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흙에 대한 본성과 애착 없이, 정(情)에 대한 근원과 믿음 없이 저 땡볕에 구슬땀을 흘릴 수는 없는 일이다. 마늘이며 감자며 정성으로 길러 철마다 자식들에게 보내주는 성스러운 의식도, 깊고 푸근한 맛으로 잘 발효된 된장처럼 알토란같은 삶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저들의 삶은 청신하고 순란하여 아침 햇살을 받은 호박꽃처럼 눈부시다. 생명의 등불을 밝히며 봄 안개처럼 눈물겨운 향기로 영혼을 일깨워주는 이름이다. 등은 호미처럼 굽고 햇볕에 그을려 주름진 얼굴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허석]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