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귀자(1955 ~ ) 작가는 전북 전주 출신으로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8년 ‘문학사상’에 단편 ‘다시 시작하는 아침’, ‘이미 닫힌 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고, 주로 일상적 현실 속에서 갈등하는 소시민들의 생활을 쓴 작품들로 유명하다.
특히, 경기도 부천에 사는 서민들의 애환을 그린 ‘원미동 사람들’은 1980년대 단편 문학의 정수라는 평가도 받았고 장편 소설 '천년의 사랑'은 2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곰’이야기는 단편소설로 1996년 발표되었고 신화를 통하여 인간 내면에 은폐된 출세 욕망을 다룬 작품으로 1996년 제41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직업은 화가로 인생 첫 번째 전시회에 친구들이 사간 몇점의 그림이 전부인 43세의 남자, 그는 그림을 판 돈을 술값으로 탕진한다. 그는 두 번의 이혼을 하고 세 번째 결혼생활 중이다. 어느 날 술에 취한 남자는 생애 두 번째 자신의 그림이 걸린 합동 전시회에서 자신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숙녀를 만난다. 그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기업인 평화 그룹 윤 회장의 막내딸이었다.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화가는 당신이 그림 살 돈이나 있겠느냐며 비틀린 소리를 하나 그녀는 그 남자의 그림을 비싼 값을 치르고 구입한다. 자신의 그림을 사준 고마움에 남자는 술에 취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술을 사달라고 청한다. 그렇게 만나기를 몇 번, 언제나 술에 취하면 그녀를 불러내고 또 그녀가 순순히 약속 장소에 나타나면 술 먹고 그녀를 끌고 마포 뒷골목 돼지갈비집, 불광동 감자탕집, 종로의 싸구려 대폿집으로 끌고 다니며 술을 얻어먹는다.
남자는 여자를 앞에 앉혀놓고 자신이 주특기인 주사를 부리는 기쁨을 누리는데, 사실 이것이 남자의 주특기라 앞의 3명의 부인 역시 남자의 그런 파멸성에 이끌려 남자와 결혼을 통해 나락으로 떨어져 간 것이다. 그는 술 먹다가 탁자를 끌어안고 넘어지기, 술집 주인이 나가라고 소리 지를 때까지 마시고 또 마시기, 전봇대를 부여잡고 토악질하기, 길바닥에 드러누워 고래 고래 노래 부르기, 그리고 자신이 연락해 놓고는 그만 좀 자신을 쫓아다니라며 여자를 쫓아내는 식이다. 눈 떠보면 그녀가 자신을 어떤 호텔이나 여관에 눕혀 놓고 갔음을 알게 되고 남자는 혼자 눈 뜬 아침에 그녀가 자신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그녀에게 행패를 부리고 싶은 유혹 사이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35세가 되도록 혼자 살아왔던 고집 센 재벌의 막내딸이 남자에게 결혼하자고 말한다. 남자는 결혼을 안 한다고 큰소리치지만, 숙소에 들어와 술을 마시다 자고 깨면 또 술을 마시며 5일간을 끙끙댄 후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5일째 되던 날 술에 취한 사내는 아침에 욕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세 번째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를 불러낸 남자는 이혼하자고 말하고는 자신은 '네 번째 결혼을 할 것이며 딸들의 양육비는 자신이 부담하겠다'라고 말한다.
세 번째 아내는 순순히 이혼에 동의하고, 남자는 재벌의 딸을 네 번째 아내로 삼는다. 재벌가의 가족들은 그를 반기지는 않지만 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이후 남자는 네 번째 아내가 사준 베레모를 쓰고, 머리도 단정하게 다듬고, 술을 끊고, 몸에 해로운 담배 대신 아내가 권해 준 파이프 담배를 물고 4번째 결혼을 통해 재벌가의 사위가 된 화제의 화가로 신문 잡지의 인터뷰를 하면서 조금씩 세련되게 변해간다.
그들 부부는 현재 살고있는 아파트가 전혀 부족함이 없는데도 아내의 권유로 화가의 작업실을 갖춘 단독 주택을 구경 다닌다. 열 달 전까지는 도저히 자신의 것으로 여길 수 없었던 저택들을 구경하면서 그는 땅을 사서 손수 집을 짓겠다고 결심한다. 바로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 살아가고자 하는 결심이다.
변화는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군신화에서 곰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쑥과 마늘만 먹고 백일을 버틴 것만큼 고통을 버티는 것과 같다. 작품 속 남자는 사람이 된 곰처럼 변화했을까. 어떤 사람의 겉이 변했다고 해서 속도 변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지저분했던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인내와 고통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성격은 5세 이전에 형성된다고 하는데 굳어진 것을 변화시키려면 결심만 앞세우고 마늘과 쑥의 매운맛과 쓴맛을 참지 못해 뛰쳐나온 호랑이의 가벼움보다는 곰처럼 무수한 인내의 과정을 견디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변화, 입에서 내뱉는 것은 두 글자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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