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장구 소리

김태식

어느 문화원에서 주최하는 국악공연 행사를 보러 갔을 때 하늘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그곳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많은 악기들 가운데 유독 장구소리가 나의 귀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얼마나 수많은 세월을 보내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단이 끊임없다. 조용조용 울리다가도 급하게 상승곡선을 타기도 한다. 때로는 애절함을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쿵더덩, 덩덩’ 지금 들려오는 장구 소리와 유년 시절에 들었던 장구 소리가 기억에 겹쳐진다. 먼 옛날에 이미 잃어버렸던 귀중한 것이 아직 한 점 남아 있다가 오롯이 가슴에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내가 살던 어릴 적 외할머니집 시골 마을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과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당집”이라고 불리는 장구 소리가 늘 끊이지 않는 조그만 집이 있었다. 그 집에 사는 분들이 무당은 아니었지만 동네에서는 그들을 천시하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곤 했다. 그 집에는 연세 지긋한 노부부가 살고 계셨는데 할아버지는 장구를 치고, 할머니는 장구 소리 장단에 맞춰 흥겨운 민요를 부르기도 했고 판소리를 열창하기도 했다. 

 

흥부가를 부르면서 박을 타는 시늉을 하기도 했고, 춘향전의 사랑가를 소리 내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민요에서 판소리까지 소화해 내는 모습은 대단한 실력자였다. 할아버지의 장구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는 타령꾼이기도 했다. 

 

시골의 집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으니, 이분들의 장구 소리와 노래가 이웃의 생활에 큰 불편을 주지는 않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분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를 새댁이라 부르며 자식이 없던 노부부는 나를 끔찍이 챙겨 주셨다. 내가 싫다고 하면서 울면 어머니께서는 “너를 좋아해 주는데 괜찮다.”고 하셨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들을 멀리했지만 나의 어머니는 그 노부부를 가까이 대해 주었다. 그때 나는 철이 들지 않았고 좋은 음악이 어떤 것인가 하는 개념이 없었던 예닐곱 살이었다. 나는 멈추는 날 없이 장구 소리 울리는 그 집이 왠지 무서웠다. 장구 소리는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같았고 간드러진 할머니의 청아한 노랫가락이 나의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다. 특히 휘영청 달 밝은 밤에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덩덩덩” 장구 소리는 소름이 돋았다. 

 

나를 보면 귀여워해 주시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래를 하곤 했다. 얼마 후, 나의 집은 시내로 이사를 했고 꽤 오랜 세월이 지나 그 노부부에 대한 생각이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갔을 즈음 나는 그분들의 장구 소리와 노래공연을 우연히 맞이한다. 1960년대 후반이었고, 통영에서 부산으로 가는 여객선 안에서였다. 

 

내가 어릴 때 보았던 모습대로 두 분의 역할은 그대로였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할아버지는 가야금까지 갖고 계셨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장구를 치고 할머니가 창唱을 할 때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할아버지의 “조오~타” 라는 추임새는 음식의 간을 맞추는 양념과도 같았다. 소리를 마치고 난 뒤에 할머니는 주머니를 들고 다니면서 돈을 구걸하듯이 받았다. 허리를 굽히는 할머니의 몸놀림이 예전 같아 보이지 않았다. 

 

“6·25 때 이북에서 혈혈단신으로 내려와 마누라를 만났고, 두 아들은 모두 월남전에 가서 전사했으며, 배운 것이라곤 내가 치는 장구와 가야금 그리고 마누라가 부르는 노래뿐이니 좀 도와주십시오.” 

 

이런 대사가 끝나고, 이북에 있을 때 장구와 가야금을 배웠고, 할머니가 사당패를 따라다니며 소리를 배웠다는 얘기까지 이어지니 여객선 안에 있던 손님들이 한 푼 두 푼 돈을 내놓기 시작했다. 내가 어릴 때 들었던 흥부가에 이어 춘향가까지 이어지니 모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관객들이 지루할 때쯤을 어떻게 알았는지 때맞춰 할아버지의 신명나는 장구 소리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흥겨운 춤을 췄다. 장구를 메고 관객 속으로 들어간 할아버지는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듯한 몸짓을 하면서 장구채에 혼을 담았다. 연세가 들어 몸놀림은 재빠르지 못했지만 장구채를 두드리는 손놀림은 마치 사시나무 떨듯이 했다. 

 

나는 문득 그 노부부가 나의 어머니에게 정을 쏟았던 이유와 나에게 다정하게 했던 사연이 뇌리를 스쳐 갔다. 외로움이 생활의 전부가 되었던 그분들은 먼저 저승으로 떠난 두 아들을 생각하며 나의 어머니를 며느리처럼 여겼던 것 같고, 나를 손자쯤으로 생각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을 이북에 두고 의지할 곳 없는 신세에 자식마저 먼저 보냈으니, 그분들의 외로움이란 형언하기 힘들었으리라. 별처럼 쏟아져 박히는 쓸쓸함과 한을 장구 소리와 노랫가락에 담아 풀어내었던 모양이다.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장구는 삶, 그 자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1.09 10:20 수정 2024.01.0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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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