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그때의 서울 여자아이는

김태식

방학이 되면 우리 마을에 있는 외갓집으로 놀러 온 서울 여자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그 소녀는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으며 유난히 피부가 하얗고 얼굴도 예쁘다. 더군다나 상냥한 서울말을 쓰는 것이 경상도 시골의 촌뜨기에게는 신기할 뿐이다. 그 여자아이가 들려주는 서울 얘기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  

 

"너거 학교는 크나." 

"응. 한 학년에 12반까지 있는데 교실이 모자라서 오전반하고 오후반으로 나누어져 있어." 

 

학교가 커도 너무 크다. 괜히 물어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나라 얘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은 서로 '니는 이해가 가나?' '우리는 한 학년에 반이 하나 둘 밖에 없다 아이가.' 하는 표정이다. 

 

"오전반은 아침에 학교 가는 것이고, 오후반은 점심 먹고 가는 것이야." 

 

이 대목에서는 어차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니 딴전을 피운다. 

 

"니 신고 있는 꽃신 그거 대기 이뿌네. 한번 벗어봐라." 

 

'타이어표' 새까만 통고무신을 신고 있는 우리는 그 꽃신을 나무 위에 걸어 놓았다. 그날 그 여자아이가 맨발로 울면서 외갓집으로 갔으니 동네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서산에 걸린 해가 노루 꼬리만 하게 되었을 때 우리 악동들의 어머니는 그 아이의 할머니에게 불려 가서 야단을 맞는다. 새댁아! 너거집 아들이 우찌 그리 별나노'라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짓궂은 친구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는 한결같다. 

 

"엄마한테 야단맞아도 그 서울 가시나 말씨 들으면 즐겁고 이해는 가지 않지만 얘기도 재밌잖아“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 여자아이도 서울로 갈 것이라는 생각에 친구들은 마지막으로 얘기를 듣기로 하지만 그 애를 불러낼 방법이 없다. 궁리 끝에 누나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쉽게 통한다. 

 

"니, 며칠 있으면 서울 가겠네." 

"응." 

"너거는 어떤 집에 사노." 

"2층집이고, 옥상이 있는 양옥집이야. 내 방은 2층에 있고 혼자 써." 

 

친구 녀석이 나에게 귓속말로 우리 동네에는 초갓집 밖에 더 있나. 간혹 기와집이 있긴 하지만. 그리고 우리는 엄마, 아빠, 누나, 동생 모두 한 방에서 같이 잔다 아이가." 

 

우리는 놀 때 '자치기' 아니면 '비석치기' 같은 것을 하는데 너희들은 무엇을 하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라디오는 시시해서 잘 안 듣고 텔레비전을 주로 보고, 친구하고 연락 할 때는 전화를 써."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우리 마을에 '라디오'라고 해야 동네에 걸려 있는 스피커 하나로 온 동네 사람이 듣고, 전화기는 동사무소에나 가야 있는데 그런 것들이 이 아이의 집에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어른들이 좋아하던 모습이 겨우 몇 달 전인데. 더군다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텔레비전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 아이의 얘기에 의하면 그 안에서는 만화영화도 나오고 사람이 움직이고 재미있는 어린이 연속극도 해 준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악동 세 녀석은 힘을 합쳐 그 애를 혼내 주기로 한다. 

 

“니, 정신 나갔나. 세상에 그런 것이 어디 있다 말이고. 머시라꼬! 만화영화를 너거 집 방에서 보고 사람이 거기에 나오고 그런다고. 그러면 너거 집 안방이 바로 극장이네." 

 

우리의 소리가 점점 커져 가니 그 서울 여자아이는 겁먹은 표정이다. 

 

"학교에 갈 때 차 타고 양옥집에서 살고 전화가 있는 것까지는 어차피 이해가 가지 않으니 우리가 포기하지만 텔레비전은 용서가 안 되니 우짜모 좋노." 

 

우리의 목소리는 더욱 높이 올라만 가고 그 여자아이는 크게 소리 내어 울고 있다. 그 아이가 미워서 울린 것은 아니다. 그녀는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많이 가졌고 시골티가 나는 데다가 때 자국이 줄줄 흐르는 우리와 비교하면 하얀 피부와 단정한 옷차림이 너무 고와 괜히 심술이 났을 뿐이다. 

 

그 여자아이에게 잘못이 있다면 우리에게 예쁜 얼굴 보여주고, 상냥한 서울 말씨 해 주고 우리가 모르는 재미있는 얘기를 해 준 것뿐이다. 친구 녀석들의 공통적인 얘기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서울 여자아이는 우는 것도 예쁘네." 

 

그날 우리 악동들은 어머니를 피해 숨을 곳을 찾아 헤매다가 늦은 밤에 집으로 살짝 들어가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집을 나왔다. 

 

그때는 1960년대 중반이었고, 우리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7.09 11:32 수정 2024.07.0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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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