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천양자 기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류는 예전에 비해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소유해도 만족함이 없고, 채우고 또 채워도 욕망과 탐욕의 끝은 보이지 않아 휴일도 없는 것 같다. 욕심과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탐욕은 욕심을 지나치게 탐하는 것이기에 문제와 위기를 일으킨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사는 곳에는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까지도 필요한 만큼의 재물·권력·명예 등에 만족하지 못한 탐욕으로 인하여 더 많이 차지하려고 서로 경쟁하며 싸우고, 미워하고, 서로에게 해악을 끼치는가 하면 심지어는 살인까지 저지른다. 한 국가와 지도자의 탐욕은 전쟁을 불사하고, 어제의 동맹국과의 우호관계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웃국가를 침략하고, 독일과 이탈리아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1차·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인류를 대혼란과 처참한 불행으로 몰아넣은 것도 탐욕에 눈이 멀어 사리판단과 선악조차 구별 못한 어리석은 인간들의 죄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죄과로 인해 결국에 개인 삶의 불행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질서마저 파괴하여 결국에는 세계 평화까지 무너뜨렸음을 역사적 경험과 교훈이 말해주고 있다.
작금에 유럽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사실도 이유를 불문하고, 네타냐후와 하마스 그리고 푸틴 등의 국가와 최고 지도자들의 탐욕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 해결은 우선 푸틴 그리고 네타냐후와 하마스 지도자가 탐욕의 늪에서 빠져나와 지혜로운 선택과 용기있는 선의지로 역사 앞에 사죄하고, 탐욕을 버리는데서부터 시작해야 개인도 사는 길이 되고, 국가와 세계 평화의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인간의 탐욕은 불사 불멸의 최악을 낳는 원천이다.
그리하여 신약성경(야고보서 1장14~15절)에는 "사실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옵니다"(공동번역판)고 말한다. 또한 불교에서도 "인간의 번뇌는 자기 중심의 탐욕과 사물에 대한 맹목적 집착에서 생긴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의 모든 번뇌를 탐진치(탐은 탐욕을, 진은 노여움과 분노를, 치는 미련함과 어리석음을 의미)로 요약하여 설명한다.
우리는 지금 탐욕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를 옛성현과 인류의 스승으로부터 어떻게 배워 갈 것인지를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꿈(vision)이 있듯이 본능적인 욕심과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과욕과 탐욕은 절제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왜냐하면 본능적 욕망(욕심)에 지배당하지 않고, 이기적 본능에 매몰되지 않아야 진정한 의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층 더 바람직한 삶의 양식(존재 양식)인 자신의 타고난 자질·재능·인간적인 소질을 남에게 봉사하고 섬기면서 남과 함께 행복을 만들어 가는 헌신적 삶으로까지 승화시켜 간다면 이보다 더 보람과 가치있는 삶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세상의 빛이 된 위인들의 삶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온인류는 흑인 노예의 상처를 핧아준 성피터 클레이버, 나병(한센병) 환우들을 사랑으로 품은 성프란시스코와 손양원 목사,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푼 장기려 박사, 아프리카의 성자로서 평생을 밀림의 사람들을 섬기며,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며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던 슈바이처 박사, 인도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가난한 사람·병든 사람·중병 등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의 보호자이며 친구인 마더 테레사 수녀 등을 기억하며 사랑과 헌신의 본보기로 삼고 있다.
온인류에게 평화를 선사한 사람들이며 인간의 시험대인 탐욕으로부터 자유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과 가슴속에는 사랑과 봉사로 가득 채워져서 탐욕이 들어갈 공간이 없는 분들이다. 우리가 돈(재물)·권력·명예 그리고 향락 등의 탐욕으로부터 참다운 자유를 누리려면,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줄 알면 위태하지 않으니 오래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즉 분수를 알고(知分), 분수를 지켜(守分), 편안함을 누리며 살기(安分)로 결심하면서 실천한다면 저절로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돈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는 교훈으로 생각한다. 인간의 삶 속에서 인간 본능인 탐욕과 욕망을 내려놓고 비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은 쉬임없이 욕심과 집착의 대상을 내려 놓고 버리는 일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움의 길을 통한 득지와 인간 관계에서의 지식·지혜를 함양하는 품성을 닦는 수기(수신)의 덕을 통해 극기해 나가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 마음속에 내재된 탐욕의 구속과 번뇌에서의 자유함을 얻고자 하는 강인한 의지 함양과 인격 공부에 힘써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불필요한 소유·탐욕·번잡한 권력·혼란스런 지식과 명예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자유함, 자아실현의 삶을 추구하는 중도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야 한다.
비록 그 길을 가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가야만 하는 필연적인 길이다. 오죽하면 논어에서 '견리사의'(見利思義)를 강조했을까. 이익을 보거든 올바름(대의)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이익도 중요하나 의로움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라는 뜻이다. 탐욕은 불행한 경쟁과 싸움을 유발해 인간 공동체를 고통스럽고 혼란하게 만들기에 버려야만 하는 대상개념이다. 탐욕의 힘은 대단하여 인간의 사고능력과 성찰의 의지마저 약화시키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고력과 양심을 마비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상 돈(재물)은 이웃과의 나눔의 대상, 즉 함께 공유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래서 재물은 독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선의와 정의의 원칙에 따라 서로 주고 받는 거래와 구매의 교환 가치였을 때에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경제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회비용(선택비용)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물질만능주의, 맘몬니즘이 신과 우상이 되어 인간을 지배하는 주객전도·가치전도의 불행한 시대로 변하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돈·권력·명예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참 행복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이는 행복의 허상을 좇아가는 삶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이 안타까운 일이고 현실이다.
현대인의 과제는 이런 현실적 풍조를 깨뜨려 탐욕의 굴레를 벗어나는 대안과 지혜의 시발점을 찿아가는 일이다. 물질이 주인이 아니고, 인간이 물질을 다스리는 원칙으로의 회복(주객전도의 가치관의 전환)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마더 테레사는 탐욕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것은 결과도 이익도 없지만 우리가 엄연히 해야할 일이다"며 하나의 주제를 예로들어 가르치고 있다. 필요 이상의 소유는 이웃을 향한 섬김·봉사·도움의 손길을 통하여 나누고 베풀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내면과 삶에 도사리는 탐욕으로부터의 참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피난처가 되기 때문이다.
소유한다는 것은 얽매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허욕과 과욕의 노예, 탐욕의 포로 그리고 사리사욕의 굴레에 얽매여 살지 말자. 모든 종교에서 가르치는 사랑(기독교), 자비심과 보살의 의미(불교), 재산의 일부를 남을 위해 희사하라는 계율(이슬람교), 인(仁)의 가르침(유교)에 귀 기울이며 현재의 자아에게 자문자답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성실이라는 거울에 비춰 성찰의 시간을 가진 후에 즉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 돈·권력·명예·향락의 노예로 살지 않고 탐욕으로부터의 참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가르친 주기도문 중 "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일용할) 양식을주시고··· " 라는 한 구절을 묵상하면서 필요한 만큼의 소유에 감사하고 자족하는 도(道)를 배워 실천하자. 가자! 자유로운 세상을 향한 작은 빛이 되기 위해!!!
진송범
법학박사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정책방송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