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담은 생존일기] 함께 살아가기 위해 먼저 자신에 충실하기

더불어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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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사로 산다는 것

함께 살아가기 위해 먼저 자신에 충실하기

 

배는 과즙과일이라 잘 익었을 때, 수확하는 일이 '어린아이' 다루듯 해야 한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가지에서 열매가 상처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따고, 상자에 살그머니 내려놓고 그다음 판매를 위한 손질도 상처 나지 않게 잘 다루어야 한다. 이런 조심스러운 과일의 특성에다가 자연환경과 결합하다 보니 한때 과수원 농사는 로또 같다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항상 수확 철 전후로 한해에 꼭 1~2개의 태풍이 고향 근처로 지나간다. 고향 근처로 지나간 태풍은 과일을 낙과를 시키게 되고 낙과(떨어진 배)된 배는 상품 가치가 '제로', 판매 불가이므로 땅에 다 파묻게 된다.


점차 농민들의 자연재해피해가 많게 되자, 농협과 농림부에서 농작물 재해보험이 손실형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떨어진 낙과율에 따라 보상을 차등 지원받는 상품으로 10% 떨어졌을 때부터 50% 떨어졌을 때까지 보상받는 보험이 있으며 낙과율에 따른 사전가입 보험료가 다 다르다. 처음 농작물손실보상보험이 등장했을 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이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젠 태풍이 온다 해도 마음 졸임이 전과 같지는 않았다. 당연히 보험에 가입하셨을 터이니 말이다.


어느 해인가 아버지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기억이 났다. 아마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추석 명절을 끼고 태풍이 고향을 덮쳤다. 한창 수확을 해야 하는 출하 직전의 배들이 꽤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아버지, 배 보험 가입하셨지요?”
"그래 가입했지, 그런데 올해는 보상 못 받는다
"왜요? 보험 가입하셨다면서요?”
"보험은 가입했는데, 농협에서 조사 나왔었는데, 낙과율이 보상기준에 못 미친단다
"? 저리 많이 떨어졌는데. 기준을 어떻게 책정하는 거예요?”
아버지께서는 도회지에 사는 아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말씀해주신 것 같다.
"보험 가입 시기, 즉 봄에 열매가 막 맺힐 때 과수원 샘플로 몇 개의 나무를 표준샘플로 지정하고 지정된 나무에 몇 개가 달렸는지 기록을 해놓았다가, 이번 태풍처럼 태풍피해 후 조사를 나와서 그중에 몇 개가 낙과되었는지를 조사한 후, 낙과율을 정해서 보험 지급 여부를 정하는데, 이번에 10%짜리 보험 들었는데, 10%가 채 안 떨어졌다네…….“
"? 저리 많이 떨어졌는데 10%가 안 떨어졌다고요?”
너무 속이 상해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물론 진짜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럼 태풍 왔다 갈 때, 미리 나가보시고, 보험 상품으로 표시해놓은 나무 열매를 몇 개 더 따버리거나, 떨어뜨리면 되잖아요?”
"야가 뭔 소리 하나, 농사짓는 사람이 아깝다고, 그 돈 받자고 자기 양심을 속이면 되나? 내가 그러면 다른 사람이 우에 되겠노. 아깝지만 이리된 거 우에겠노…….”
…….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다.
농부인 아버지에게 1년을 자식처럼 공들인 판매 직전의 배, 낙과된 그 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농사꾼이 양심을 속이면 안 된다는 말씀은 아버지 당신의 삶에 스스로 충실하기 위한 자기다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마음이 겸허해진다.

 

혼자는 살아가지 않는 세상이다. '자연인' 이 아니라면 누군가와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든, 누군가에게 기대고 살아가든 어쨌든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경제적,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말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자기 양심을 속이면 되나?"라는 말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속일 수 있으나 당신의 양심을 속이고 싶지 않다는 말씀이었으리라그렇다고 우리 아버지가 '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려면 먼저 자신의 삶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살면서 참으로 많은 기준, 원칙들, 규범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사회생활이라는 이유로 지켜야 할 것들도 많다. 그것들 중에는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처럼 느끼지 않는 것들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 타자에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기에 자신만의 삶의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가슴에 새겨 살아가려 노력한다면 오늘의 나의 삶이 좀 더 충만하지 않을까?

역경에 처한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는 돌봄 종사자(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등)들은 특히나 1:1의 대면 관계를 맺을 일이 많다. 개별화된 이용자의 의료, 건강, 생활환경을 접하게 되고 특히나 이용자의 정신 신체상의 특성과 인생의 시기에서 취약한 지점들과 만나게 된다. 이러한 원인으로 이 일을 하는 이들은 다른 이에 대해 알게 되는 일 들이 많다. 이 일과 행동이 나의 직업관과 직업군에서 요구하는 윤리기준과 나의 삶의 기준에서 부합되는지 안 되는지를 다른 이는 몰라도 자신만은 알 수 있다. 나는 그 노력의 목적으로 첫인상이 중요하지만, 첫인상으로 선입견에 빠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충실하는 각자의 방법을 먼저 정하고 노력하고 습관화하여야 한다. 작은 것에서부터 말이다. 출하 직전의 떨어진 낙과가 아깝지만, 아들에게 훈계할 수 있는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다져진 마음은 아니리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나 자신에 좀 더 충실해지는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은 시간이 흘러간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기

농사꾼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가르침이 오늘 이 일을 하는 나에게 묵직하게 다가오는 날이다.


고향 배밭 사진

 

#직장생활 #진심 #사회복지사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사로 산다는 것

 

저자 소개
대표 이력  : 25년간 사회복지사의 정체성을 가지고 민간, 공공, 행정기관에서 일함
대표작  :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사로 산다는 것 저자
이메일  : biblepre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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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11.20 14:08 수정 2024.11.2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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