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척박하고 신비롭고 두렵고 아름다운 그곳 히말라야를 떠올리면 인간의 언어를 다 풀어놓아도 설명할 수 없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 그 산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압도당한다. 고통의 땅이자 축복의 땅 히말라야에서 사람들은 그 긴긴 시간을 어디에 기대 살았을까. 인간의 정신은 히말라야에서 종교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유전자 세포마다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고난의 땅에서 어찌 살아남았을까. 특별히 자연이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을 사랑해서 자연선택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을 선택해서 살아남았는지 모른다.
히말라야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삶이다. 삶이 종교다. 그래야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태산이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뫼이지만 히말라야는 높아도 너무 높다. 세계 최고 모험가들의 생명을 건 놀이터다. 생명을 걸어야 오를 수 있는 그 산을 사람들은 ‘눈의 거처’로 부른다. 이 눈의 거처에 있는 만년설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아시아를 두루 관통한다. 한줄기는 인도의 갠지스강으로 흘러가고 또 한줄기는 파키스탄의 인더스강으로 흘러가고 또 한줄기는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지나는 메콩강이 되고 또 한줄기는 중국의 장강이 된다.
히말라야 설산의 전설이 된 수행자 밀라레빠는 눈 덮인 히말라야 동굴에서 얇은 천 쪼가리 하나 걸치고 속세와 인연을 끊은 채 수행에 전념했다. 티베트의 성자가 된 밀라레빠는 삶으로부터 수행을 통해 해탈에 이르는 가르침을 설법했다. 그 설법의 한 부분이 ‘십만송’이다. ‘십만송’은 처절하고 경이로운 깨달음의 노래다. 히말라야 동굴에서 보릿가루를 먹으며 오랫동안 정진했다. 보릿가루가 떨어지면 풀죽만 먹으면서 수행했다. 밀라레빠는 수행자이면서 언어능력이 뛰어난 시인이다. 자신이 깨달은 것을 시로 풀어냈다. 그 시가 무려 ‘십만송’이다. 방대하고 불가사의한 숫자다.
여기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깨달음의 동굴
위로는 신들의 거처인 설산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발아래 까마득한 마을에는
신실한 신도들이 살아가고
사방을 에워싼 봉우리에는
백설이 가득 쌓여 있네
앞에는 소원 성취의 나무들이 울창하고
골짜기 사이사이 초원에는 야생꽃이 활짝 피고
달콤한 향기 찾아 연꽃 위에는 벌나비떼 잉잉거리고
굽이진 강둑과 호수 위에는
흰 두루미들이 긴 목을 늘어뜨리고
아름다운 정경에 도취되어 있네
나뭇가지 사이로 산새들이 노래하고
수양버들은 미풍에 하늘거리네.
나무 꼭대기에 원숭이들 매달려 즐거워하고
양떼가 흩어져 풀을 뜯는 목초지에서
생기에 넘쳐나는 목동들의
아름다운 갈대피리 소리
욕망과 갈망에 불타는 세속 사람들은
세사에 얽매여 대지의 노예가 되었도다
이 시는 ‘십만송’ 중에서 ‘락마에서 부른 노래’의 일부분이다. 히말라야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시다.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욕망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다. 문명의 중심에서 사는 사람들도 욕망의 노예가 되기 쉽고 저 대 자연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욕망의 불길이 타오른다. 그러니 사람이란 어디에서든 마음을 갈고 닦아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밀라레빠는 수행을 통해 더 나은 능력이나 진리나 자유를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만들고 있는 나를 보는 것이다. ‘십만송’은 그런 나를 바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노래다.
‘십만송’의 방대함에 눌려 언제 다 읽을까 생각하겠지만 그냥 띄엄띄엄 읽어도 좋고 일없는 어느 날 읽어도 좋고 몇 년 후에 읽어도 좋은 ‘시’다. 히말라야 설산의 아름다움처럼 그냥 바라만 봐도 좋고 책장을 덮어두고 잊어 버려도 좋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련하게 봐도 좋고 별들의 고향이 궁금해서 우주를 바라보듯 봐도 좋다. 깨달음의 노래 ‘십만송’을 지은 밀레라빠는 신통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깨우치던 중 그를 질투하던 승려가 준 독이 든 우유를 마시고 83세에 죽었다.
세상의 스승은 많지만, 히말라야 지붕을 머리에 이고 사는 티베트 사람 중에 참으로 아름다운 스승 밀라레빠를 경외한다면 ‘십만송’을 읽어야 한다. 종교인 듯 종교 아닌 종교 같은 시 ‘십만송’은 경전이나 지식보다 은둔과 명상을 통해 시로 승화된 아름다운 노래로 지혜를 터득했다. 초인적인 의지로 사람들에게 전했던 지혜가 ‘십만송’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둠을 걷어내는 자, 영적인 안내자, 깨달음을 이끌어주는 스승 밀라레빠의 깨달음의 노래를 들어보자.
애매한 언어는 오해받기 쉬워
우리는 비유로 노래합니다.
임의 마음은 맑고 깊을지라도
무드라의 자세로 경청하소서!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