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수요편지 김정하 입니다.
요즘 집안일이 너무 힘겹게 느껴지신 않나요?
잠이 많아졌거나 혹은 불면에 시달리진 않나요?
식욕이 없어나 되려 과한 식욕에 과식을 하진 않나요?
우울을 나타내는 문진표에 자주 등장하는 질문들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은 쉽고 간단하게 처리하는 일들도 곱절의 시간이 걸릴만큼 항상 집안일을 버겁게 느껴었는데 스스로 우울을 알아챈건 상담을 시작하고 나서였습니다.
주변 환경은 제 우울의 정도를 표현한 듯했습니다. 세탁이 끝난 옷들이 쌓여있는 더미, 꽉 들어차 있는 쓰레기통, 주방 개수대에 쌓여있는 설거지, 기름기가 만연한 인덕션, 붉은 곰팡이로 물든 것 같은 화장실 등. 분명 처음에는 하나만 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돌아서면 사방에 빼곡히 들어찬 집안일에 잔뜻 짓눌려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우울을 떨치고 많이 좋아져서 여러개의 신호가 쌓이기 전에 하나의 신호만 보고도 제 상태를 살필 수 있게 됐습니다. 저의 또다른 에너지 지표는 요리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든일이 있어서 지쳐 소파에 누워있다가도,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을 생각이 들면 엉덩이가 가뿐합니다. 냉장고 앞에 서서 음식 재료를 하나씩 꺼내고, 다듬고 조리하는 과정은 신이납니다. 맛있는 음식과 즐겁게 먹을 남편을 생각하면 절로 기운이 납니다.
헌데 정말 정말 힘이들땐 요리를 못합니다. 게다가 집에 밥도 없고, 재료도 없고, 혼자서 밥을 먹어야할 땐 요리할 기운이 나질 않습니다. 그럼 이때다 싶어 그동안 집밥만 먹던 스스로에게 외식을 선물합니다. 밖에나가서 먹는다고 특별한 음식을 먹는건 아닙니다. 평소에 만들고 싶었던 음식이나 더 잘 만들고 싶었던 음식 공부하러 갑니다.
하루는 집 앞에 파스타가게에서 알리오 올리오를 시켜 먹었습니다. 간단한 재료지만 집에선 잘 곁들여 먹지 않는 루꼴라가 색다른 조합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에 재미있는 공부까지 더해지면 다시 에너지를 충전해서 저의 주방에 들어갑니다.
지난 주에는 1년 8개월을 지속한 상담을 졸업했습니다. 상담선생님께서 마치시면서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분명 상담 전처럼 힘들고 우울한 날이 있을꺼예요.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감정을 알아채고 보살펴 줄 수 있는 힘이 생겼으니까 이제 실전으로 나가서 적용해보세요.”
분명 요리를 못할 만큼 힘든 날도 있겠죠. 그럼 누군가가 만든 따뜻한 요리를 먹고 힘을 내어 다시 조리도구를 잡아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일상이 지치고 힘겨울 때 나타나는 현상을 잘 기록해두세요. 저처럼 집안일이 될 수도 있고, 요리가 될 수도 있겠죠. 그리고 그 현상이 나타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스스로를 예뻐해주세요. 그럼 또 기운이 나서 다음을 나아갈 수 있을꺼예요. 오늘도 묵묵히 하루를 보내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K People Focus 김정하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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