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비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세계는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파커 보울스의 관계를 ‘세기의 불륜’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반세기에 걸쳐 찰스의 곁을 지켜온 이 여성은 단순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카밀라 파커 보울스, 그녀는 가장 강력한 유혹자 유형 중 하나인 ‘헌신형 유혹자’로서, 찰스의 내면을 꿰뚫고 그의 상처와 결핍을 껴안아 평생의 파트너가 되었다. 과연 이 사랑은 부도덕한 욕망이었을까, 아니면 시대를 초월한 영혼의 동행이었을까?
유혹의 서막: 왕세자를 흔든 한 마디
1971년, 찰스와 카밀라는 루시아 산타크루즈라는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난다. 그 첫인사는 충격적이다.
“우리 증조할머니가 당신 고조할아버지의 정부였다는 걸 아세요?”
실제로 카밀라의 증조할머니 앨리스 케펠은 에드워드 7세의 정부였다. 자신의 가문 속 이야기로 찰스의 세계를 건드린 그녀는, 그의 외로움과 호기심을 단숨에 파고들었다.
찰스는 사랑에 빠졌지만, 왕실의 규범과 가문 서열 문제로 군 입대를 하며 이별한다. 카밀라는 앤드류 파커 보울스와 결혼하며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찰스는 그녀를 잊지 못했다.
1979년, IRA 테러로 외삼촌 마운트배튼 경을 잃은 찰스는 유일하게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 유부녀가 된 카밀라에게 돌아간다. 이때부터 불륜은 현실이 되었고, 결국 다이애나와의 결혼과 이혼, 다이애나의 죽음까지 이어지는 왕실 최대의 스캔들이 시작된다.
침묵의 유혹: 헌신형 러버의 힘
카밀라는 찰스에게 무엇을 원하지 않았다. 결혼도, 권력도, 보석도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찰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의 결핍을 채우며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외로운 왕세자였고,
그녀는 그 외로움을 알아보고, 가만히 곁에 머물렀다.
이런 ‘아이디얼 러버’ 유형의 유혹자는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심리적 깊이에서 가장 강력한 유혹자다. 찰스는 다이애나와 결혼했지만, 결혼 내내 카밀라에게 감정을 의지했다.
그녀는 찰스가 다이애나를 아내로 선택할 때에도 조언했고, 그 후에도 그림자처럼 곁에 머물렀다. 찰스가 결혼식 당일, 카밀라의 남편과 그녀의 아들을 자신의 측근으로 배치할 정도로 마음을 못 끊은 이유는 바로 이 깊은 심리적 연결 때문이었다.
세기의 유혹자이자, 정치적 생존자
1994년, 찰스는 공영방송에서 불륜을 인정했고, 1995년 카밀라도 이혼한다. 1996년 다이애나와 찰스가 공식 이혼하고, 이듬해 다이애나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이후 2005년,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찰스와 카밀라는 결혼한다.
영국 성공회의 법까지 개정되며 성사된 이 결혼은, 세기적 논란을 넘어 정치적 승리이자 대중심리의 전환을 이끈 유혹의 마무리였다.
카밀라는 이제 ‘콘월 공작부인’에서 ‘왕비’로 가는 길목에 있다. 그녀의 이미지도 2005년 이후부터는 점차 개선되었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전에도 그녀를 점차 인정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유혹의 본질: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사람
카밀라 파커 보울스는 미인도, 귀족도 아닌 여인이었다. 하지만 찰스의 내면을 이해하고 위로한 사람이었다. 유혹자 유형 중 헌신형 러버는 상대가 잃어버린 것을 복원해주는 이들이다. 찰스에게 있어 그것은 ‘자기 존재의 가치’였다.
왕세자라는 위치, 여왕이라는 어머니, 무거운 책임감. 이 모든 것 아래 찰스는 언제나 고립된 아들이었다. 그런 찰스에게 카밀라는 자신감과 유희, 인간적인 연결을 선물한 존재였다.
그녀는 자신이 모든 것을 갖춘 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감정적 유대를 제공한 유일한 존재였고, 바로 그 점이 찰스를 끝까지 그녀에게 끌리게 만든 결정적 이유였다.
결론: 사랑이 이긴 유혹, 혹은 유혹이 만든 사랑
카밀라는 찰스의 삶을 바꾸었고, 결국 그의 곁을 차지했다. 세상은 그들을 ‘세기의 불륜’이라 부르지만, 한 사람의 외로움에 평생을 응답한 유혹자의 이야기로 본다면, 이 사랑은 단순한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오늘날의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역시, 같은 패턴을 따라가고 있다. 잃어버린 것을 알아보고, 그것을 채워주는 사람에게 빠지는 남자들. 이 부자(父子)는 어쩌면 같은 유혹의 코드에 움직이는 존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