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동서문학상 수상자 모임 동서학회 동인지 <동서문학 21 당신은 그곳의 바람을 모른다> 김응혜,최지온, 홍숙영 등의 시와 강미애, 노기화, 김선자, 최선자 등의 수필, 이마음, 신방순, 추수진 등의 아동문학, 김은정, 이미영, 이병숙 등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목 차>
인사말 동서문학회 회장 홍성남 4
축하글 동서식품(주) 대표이사 사장 김광수 8
시
강다연 거참 잘 생겼다 14
김소나 999번 선로의 열차 15
김영애 구식과 신식사이 16
김응혜 여강길, 안단테 18
김효정 투영하다 20
박경자 고임돌 22
박민교 펜트하우스 23
박소언 모래선 24
박인숙 케이블카를 타다 25
박주영 눈이 내리는 이유 27
성영희 여름 짐승 몰아내기 29
손영미 피뢰침 31
손은주 나는 내가 보고 싶어 33
영정화 떠나니? 아니. 34
원기자 노송의 굽은 등에 빗금을 그리듯 36
윤경예 꽃막대기, 봄 38
윤은진 씬지로이드 40
이숙희 애기똥풀 42
이진 갈치 44
이타린 Go in 동백 45
정연희 채널 유목민 47
정영미 꽃이 곡선을 만들며 피는 이유 49
조수선 오월 연두 51
최규리 당신의 가슴과 내 귀 사이에 52
최분임 속치마 원근법 54
최희명 모기 56
최지온 나비는 픽션 57
한명희 눈송이의 거처 59
홍성남 내일 날씨는 모름 60
홍숙영 골목 문상 62
황현숙 응급실 64
수필
강미애 커튼콜 68
고옥란 지구를 끌고 걷는 남자 71
김경희 밤의 도서관 74
김선자 갇힌 나, 가둔 나 77
김숙경 따듯한 귀갓길 80
김남숙 가족 83
김정심 편지 86
김정옥 흉터 89
김창희 봄, 오다 92
노기화 층계참이 필요해 95
나순희 침 98
박경옥 사랑이 다시 내게로 왔다 101
박상분 공간을 즐기다 104
박선령 봄이 흐른다 107
박순자 강정 110
박애자 다시, 나무를 심다 113
서정화 두근두근 사라짐 116
성윤숙 봄 119
송주형 첫 집 122
안해영 비닐의 시간 125
오미향 당신은 그곳의 바람을 모른다 127
윤국희 마스크의 질문 130
윤영순 틀을 깨다 133
윤태봉 차암 좋겠네! 136
이갑순 지하철 연가 139
이광순 낯선 길을 걷다 142
이상수 살피꽃밭 145
이영옥 코트 한 벌의 기억 148
이옥경 분홍색 의자 151
이준옥 내가 아직 여기 있는 이유 154
이풍경 단짝 157
장보민 고구마에 얹은 어미의 마음 160
정지우 아버지의 된장국 163
조현숙 난감한 글, 행복한 글 166
차갑수 동서문학회 發足을 정리하며 169
최선자 때론 아픔이 아름답다 172
홍정미 줄을 잡다 175
동시
김두례 쭈그렁이 180
김윤옥 우리 가족의 헤어스타일 181
송방순 같은 마음, 다른 생각 182
오성순 음표 가족 183
이마음 나무의 봄 185
이선행 달빛 186
이현진 엄마 187
정명희 꽃의 번호표 189
정미경 나비 포옹 190
조계향 비행기 191
최정희 참말 193
추수진 슬픔을 세어줄게 194
포공영 네모난 집 195
동화
구본석 유치원 가는 길 200
김정자 뽀리가 좋아 2 205
청안 오이맨 211
소설
김미희 봄의 그림자 220
김은정 노엘 227
김응숙 끝을 향해 가는 남자 234
김혜영 잼 238
이남주 수레로 97 245
이미영 샴 253
이병숙 매듭 260
현정원 어떤 충동, 어떤 로망 268
편집후기 277
<책 속으로>
여강*을 따라 걸으면
무심히 스쳤던 바람 한줄기
햇살 한줌도
오랜 그리움으로 스며든다
풀 한 포기까지도 품에 안고 키운 왕터쌀길,
도공의 손길이 느껴지는 빼어난 경관의 천년도자기길은
흙의 숨소리도 다르게 느껴진다
강섶에 서면
황마黃馬와 여마驪馬를 타고 온
전설들이 시간을 건너와 황포돛배에서 속살거리다
싸리산으로 뛰어올라 마당바위의 전설을 토해놓는다
이른 아침 싸리비로 잘 쓸려진 황학산에 오르면
여강 위로 펼쳐진 구름바다와
그 위로 산봉우리와 건물들이 섬처럼 둥둥 떠 있는
기이한 풍경에 잠시 숨이 멎고
쉬어가라며 툭툭 발길질하는 돌멩이 들추면
연둣빛 바람 불어와 고인 마음 다 비워낸다
계절을 넘어 조찰히 씻긴 윤슬
나루터에 놓인 반짝이는 시간 쉼 없이 닦느라 눈부시다
-김응혜.시 <여강길, 안단테 > 중
눈이 올 거라고 했다
눈을 기다리는 동안
내가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실눈으로 오면, 백 년은 지나야 쌓 이겠구나 눈 오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눈으로 눈 오는 걸 보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한 소리로 눈 내리는 소리를 들 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려 했다 그런 것들이, 눈처 럼 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밤새 목도리를 짰다 완성하면 다시 풀었다
온종일 그림을 그렸다가 지워버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오늘만은 꿈을 꾸지 말자
눈은 어제도 내렸고 내일도 내릴 거라서
내린 눈은 녹아버릴 테니까
눈이 내리는 동안
바람은 쌓인 눈을 쓸고 다녔다
나의 죄도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나는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고 눈을 감았다
시간이 눈처럼 오래 내리기 시작했다
쌓이지 않고 흩어지기만 했다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일까
남아 있는 것이 있기는 할까
내 꿈은 가위를 든 정원사였고
피카소를 꿈꾸는 화가였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오늘은 눈이 아주 많이 올 거라고 했다
감은 눈을 뜨면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홍성남. 시<내일 날씨는 모름> 전문
화개정원 매표소를 지나자 저만치 초막 한 채 동그마니 앉아 있다. 지붕 위로는 물살 흐르듯 가을하늘이 파랗다. 부신 햇살 을 가르며 한 걸음씩 다가선다. 조선의 10대 군주, 연산군의 유 배지인 초막은 외따로 떨어져 고요하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초막을 에워쌌다. 뒤얽힌 줄기에선 억센 가시가 불거져 나와 독침처럼 느껴진다. 순간 서너 발짝 물러선 다. 죄인을 귀양살이하는 곳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 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어 둔다는 위리안치圍籬安置다. 바깥 세상하고 완전히 교류가 끊어진 채 살아야 한다.
사립문 옆에 두 명의 호위 무사가 서 있다. 내가 다가서자, 얼 굴을 찡그린다. 들고 있던 창으로 막을 기세다. 하지만 내시는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린다. 방문까지 활짝 열어 두었다. 좁은 방안에 그가 앉아 있다. 어느 끼니를 때우던 중일 까. 밥그릇, 국그릇, 종지 하나가 전부다. 밥뚜껑은 열지도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저 타율적 고립을 보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가 그의 곁에 앉는다. 탱자나무 가시덤 불이 처마까지 걸터누워 하늘도 보이지 않는다. 누워보면 다르 겠지 싶었다. 멍석 보풀이 일어나서 밥상에 떨어질까 조심조심
눕는다. 가로눕고 되눕고 이리저리 누운 자세를 바꿔본다. 마찬 가지다. 좁고 높은 울타리는 햇볕까지 막아선다. 그곳에 누우니 나도 갇힌다.
숫자의 울타리로 귀양이라도 왔을까. 나도 오래도록 회계會計 안에 위리안치다. 매일 숫자를 가지고 더하고 빼고 헤아리며, 곱 하고 나누고 따지어 밝힌다. 계산기를 가까이 두다 보니, 일상생 활에서도 답을 내는 게 익숙하다. 오가는 마음도 잣대를 대고 정답을 찾으려 한다. 상대의 말을 액면가 그대로 들어주면 그만 인걸. 요리조리 돌려가며 오차가 없는지를 되짚는다. 때론 감정 의 기복으로 평형을 잃고 산다. 숫자의 울타리에 갇힌 마음씨도 이기적으로 변해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선자.수필 <갇힌 나, 가둔 나 > 중에서
보름달 엉덩이가
구름 변기에 앉아 오줌을 눈다
높은 지붕이 가려주고
플라타너스 잎새가 가려주고
좁은 골목 높은 담장이 가려준다
쏴아 -
감나무 이파리가 달빛에 젖는다
연못 가득 고여 출렁이는 달빛
나무뿌리들이 땅속으로 깊어진다
-이선행 .동시 <달빛> 전문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창문가로 달 려갔다. 창가에 돌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돌은 반은 검고 반은 하얬다. 누가 그랬을까? 너는 굳은 표정으로 절반만 남은 창을 바라보았다. 뭐가 보여? 아니, 뭐가 보일까 해서. 나도 창문을 응 시했다. 침묵이 흘렀다. 어느새 너의 동공이 커다랗게 열리기 시 작했다. 나무가 보여. 창 안쪽에 반사된 것처럼. 그래? 나도 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안 보이는 데. 안 보일 거야. 그건 반쪽짜리거든. 창문을 다시 바라보았다. 네 말대로라면 내가 보아야 할 것이 따로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디선가 새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창문에 내 모든 감각을 쏟았다. 눈앞의 풍 경이 점점 뚜렷해졌다. 그 순간 유리창 너머로 스쳐지나가는 것 이 있었다. 눈을 깜박이지 않았기에 알아챌 수 있는 움직임이었 다. 날개가 달렸고, 무척 빨랐고, 아주 작았다. 나는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다시 눈 앞에 나타난 것은 놀라웠다. 그것은 새처럼 생긴 아주 작은 아이였다. 아!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무 슨 일이야? 보여. 천사인가 봐. 날개가 달린, 아 주 작은 아이가 날아다녀. 나와 너는 각자에게 보이는 것을 보았다. 너는 반쪽 이지만 그 무엇보다 우람한 나무를, 나는 날아다니는 작은 천사 를. 우리는 서로가 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서로에게 말
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하나이지만 둘 이었고 둘이지만 하나였기에 우리는 그 누구보다 다채로운 정 신세계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가 되면 찾아오겠 다는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 둥 쳤다. 오늘은 그가 올까? 그가 오면 어떡하지? 만약 그가 오 면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겠지. 그런 소리 하지 마. 누 가 죽고 누가 살아남는다는 거야? 왜, 네가 죽고 내가 살아남을 까봐? 바보 같은 소리, 네가 죽고 내가 살아남을까봐 그래. 아차! 또 바보 같다고 해버렸다. 하지만 너는 턱을 괴고 있다가 한 마 디를 툭 던졌다. 누군가가 꼭 죽어야 한다면. 왜 자꾸 죽는다고 하는 거야? 다른 누군가는 한평생 지루해지겠지. 나는 너의 말 에 그만 머리를 감싸 쥐고 말았다. 괴로운 일이군. 끔찍한 일이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소년 한 명이 서 있었다.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소년은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였다. 우리는 소년을 거실로 안 내했다. 마침 밭에서 갓 딴 비트를 갈아놓았던 참이었다. 소년은 우리가 건넨 붉은 주스를 단숨에 마셨다.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 을 느꼈는지 소년이 수줍게 웃었다. 그분이 전하라고 하셨습니 다. 그분이라면? 네, 그분이요. 언젠가는 만나야 할 분. 종착역 같은 분의 전갈을 전해드립니다.
-이미영.소설<샴>중에서
<출판사 서평>
지난 겨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에 매달려 연연하지 않고 사건을 객관화하고 또 글로써 참여한다. 2년마다 새로운 회원이 유입되는 동서문학회는 동인지에 새로운 인물이 대거 등장한다. 성장의 동력이다. 21집 청년의 문학지에 갈채를 보낸다. 우리는 그곳의 바람을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