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근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사무국장의 20여 년 발걸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현장'이다. 그가 걸어온 길은 화려하지 않았다. 이름 없는 산길을 오르고, 오래된 지적도와 고지도를 수없이 대조하며, 잡목에 가려진 언덕을 뒤지는 일이 그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바로 우리 지역에서 잊혀졌던 역사문화유산들이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대학 강단에서 디자인과 인터넷정보, 아동미술, 미디어와 영화제작, 블로그 등을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했다. 하지만 교육자의 삶에 머물지 않았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고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그를 향토사 연구의 길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군사사에 관심을 가진 밀리터리 마니아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관심은 자연스럽게 경남의 읍성과 성곽, 그리고 조선시대 국가 제례시설인 사직단과 여제단, 성황단으로 옮겨갔다.
그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8년이었다.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창원 사직단 터를 찾아낸 것이다.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 고지도와 지적도, 현장 답사를 반복하며 얻어낸 결과였다. 이 공로로 그는 경상남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조 사무국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사천 사직단을, 2020년에는 양산 사직단을 잇따라 찾아냈다. 특히 양산 사직단은 1912년 조선총독부 지적도에 남아 있는 '사(社)'와 '단(壇)' 표시를 근거로 현재 공장 부지 아래에 사직단이 있었음을 밝혀내 학계와 지역사회에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시선은 곧 경남을 넘어 전국으로 향했다. 경북 영주와 전북 순창, 경기도 용인, 충남 홍주 등 전국 곳곳을 직접 답사하며 지금까지 확인한 사직단만 약 90곳에 이른다. 발견 사실을 언론과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에 꾸준히 알려 문화유산 복원과 보존의 계기를 마련해 왔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21년 영남지역 매장문화재 보호활동 유공상을 수상했다. 전국에 흩어진 '3단 1교' 가운데 사직단·여제단·성황단 발굴에 기여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조현근 사무국장의 연구는 문화유산에만 머물지 않았다. 2020년에는 이순신전략연구소 이봉수 소장과 함께 임진왜란 최대 논쟁 가운데 하나인 합포해전의 실제 전투 장소를 검증하기 위해 직접 바다에 나섰다.

거제 영등포에서 진해 학개와 마산만을 잇는 항로를 요트로 항해하며 조선 수군 판옥선의 평균 속도를 적용한 실측 조사를 실시했다. 두 차례의 현장 검증을 통해 합포해전의 무대는 진해 학개가 아니라 마산만 일대라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고, 이를 토대로 2021년 11월 창원시의회에서 합포해전 토론회를 개최해 시민과 전문가들이 함께 역사적 사실을 논의하는 장을 마련했다.
조 사무국장의 연구 방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록만 믿지 않고 반드시 현장을 찾는다는 점이다. 고문헌을 읽고, 고지도를 분석하고, 항공사진과 지적도를 비교한 뒤 직접 걸어가서 확인한다. 필요하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며 당시의 이동 시간까지 재현한다.
그는 역사란 과거를 이야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현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라고 믿는다. 지역 곳곳에는 아직도 기록에서 사라졌거나 잊혀진 문화유산이 적지 않다. 누군가 관심을 갖고 찾아내지 않으면 개발과 함께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조현근 사무국장이 오늘도 배낭 하나 메고 현장으로 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묵묵한 발품을 선택한 연구자다. 20년 넘게 이어진 그의 답사는 결국 한 사람의 열정이 지역의 역사를 되살리고, 잊혀진 문화유산의 가치를 다시 세상에 알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발걸음은 지금도 새로운 역사 지도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