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란 혼자 하는 것이란 생각이 내겐 지배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오랜 동안 혼자서 이런저런 책을 꽤나 뒤적였던 것 같다. 사실상 전공 서적을 읽고 논문을 준비하거나 논문자료를 찾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한편으로는 국문 서적을 빨리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국문 소설이나 산문집 그리고 교양서를 읽는 사람을 보면, 내게 언제 저런 시간과 기회가 있을까 내심 부럽기만 했다.
원서로 된 소설이나 시집은 아무리 빨리 읽으려고 해도 며칠은 걸리는 일이어서, 나로서는 삶의 상당한 기간을 외국어 능력 배양과 논문 쓰기에 할애한 셈이다. 따라서 주변에서 크고 작은 독서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귀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모임에 참석한다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래도 언젠가 기회는 오는 법.
우연한 기회에 정년을 한 은사께서 주관하시는 독서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크지 않은 독서모임이지만,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것의 중요함과 소중함을 느끼게 한 자리였다. 그 이후로 그동안 전공서적에만 몰두한 것에 대한 한풀이 내지는 보상이라도 하듯이, 국문 교양서와 인문사회 도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도서관이며, 시립. 공립 도서관을 가리지 않고 서가에서 눈에 들어오는 책을 뒤적였다. 이 무렵에 작은 독서 소모임에 가입하면서 토론을 위해 손에 잡은 책이 피에르 바야르의 『비독서에 관한 통찰』이다.
대부분의 책이 ‘읽기의 유익함’을 강조하는 반면에, 이 책은 ‘읽지 않는 것의 장점’을 얘기하고 있으니 특이할 수밖에 없다. 그런 특별함이 나로 하여금 이 책에 관심을 갖고, ‘비독서’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해주었다. 바야르 자신이 "비독서의 좋은 점을 알려주는 텍스트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듯이, 그 점에서 “이 책은 유일무이하며 특별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조금은 과장된)이라는 바야르의 견해에 상당 부분 공감하면서, 그의 논점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바야르가 제기하는 비독서의 두려움은 크게 세 가지인데, 독서에 관련된 통념과 오류를 적확하게 지적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먼저, 독서의 의무이다. 바야르는 “우리 사회는 독서가 신성시되는 사회이다. 일정한 모범적 텍스트들이 있는데, 그런 책들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서 이를 감히 드러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라고 밝힌다.
두 번째는 정독의 의무. 읽지 않는 것은 부족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게다가 후딱 대충 읽어 해치우는 것을 드러내거나, 또 그렇게 읽었다고 밝히는 것은 눈총을 받게 되는 부끄러운 행위이다. 이점에 있어서 독서행위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통념을 바야르가 솔직하고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독서와 담론에 관한 선입견이다. 어떤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에 대해 어는 정도 정확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과연 그런 것일까. 바야르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누군가와 열정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이상의 세 가지, 즉 독서의 의무, 정독의 의무, 독서. 담론에 대한 선입견 등은 보편적이고 타당한 인식이며 통념적으로 인정돼왔던 바이다. 그렇지만 바야르는 이러한 것들이 사실은 독서를 방해하고, 독서를 두렵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기존의 관점을 해체하고 정형화된 독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의 틀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약속한 날 토론회에 가려고 하면, 세상일과 시간에 쫓겨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갈 때가 있다. 이제부터는 그런 상황이 되더라도 굳이 죄인의 심정으로 무겁게 참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책을 건성으로 읽은 것이 혹 토론 중에 드러나더라도, 바야르를 들먹이면서 조금은 낯 두껍게 덜 미안해해도 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때론 “독서를 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이 객관적 입장에서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괴변을 들먹이면서 뻔뻔하게 독서모임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비독서’의 적당한 변명거리를 제공해 준 바야르에게 감사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러한 일은 없도록 해야겠지”라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이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