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 칼럼] 드라마로 홀리는 바둑

민은숙

집을 짓는 행위를 고상하고 절제된 미학이라고 한다. 이는 가로와 세로가 만든 반듯한 선의 교차점에 돌을 놓아 공간을 채우는 보드게임 바둑이다. 화투나 카드와는 다른 더 많이 집을 짓는 쪽이 이긴다. 

바둑이 매력적이라고 느끼게 된 것은 순전히 드라마 탓이다. 첫 번째는 미생이란 드라마이다. 내공과 실력을 겸비했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딪힌 장그래가 원 인터내셔날에 인턴으로 입사한 후일담이다. 매회 바둑의 기법과 맞아떨어지는 손자병법이 삶의 지혜로 숨어 있었다. 드라마는 웹툰이 원작이지만 배우들의 싱크로율이 만만치 않았다. 

매회가 끝날 때마다 여운이 길었다. 바둑을 배우면 저렇게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를 잘할 수 있을까. 고졸이란 보잘것없는 학벌임에도 기원에서 오랫동안 다져진 근력은 인턴에 불과할지언정 사회생활이란 실사판에서는 자생력이 강하다. 사람을 홀리는 바둑의 세계가 궁금하다. 겉으로는 평온한 잔잔한 물결이 속에선 용트림 치는 비상을 언제라도 할 수 있는 만반의 자세가 아름답다. 도를 깨우친 노자가 환생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역이 더 광범위함을 이제는 안다. 보고 있으나 볼 수 없고 듣고자 하나 들을 수 없는 한계가 그것을 막고 있을 뿐이다. 바둑을 배우면 보려 하나 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만큼 바둑은 절제된 무예를 닦는 것만 같다. 겉으론 평온하고 안에서 검술을 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두 번째는 응답하라 1988이다. 골목을 두고 동네 사람들이 함께 정을 나누며 사는 휴먼 스토리이다. 유명 바둑 프로 기사인 김택이다. 그의 실제 인물은 알파고와 세기의 바둑 대결을 겨룬 이세돌이라고 한다. 이세돌은 알파고를 한번 이긴 세기의 전무후무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순둥순둥하니 바둑 이외에는 관심이 없어 큰돈을 잘 빌려준다. 여자친구인 덕선이가 야무지게 그를 관리하는 이유이다. 바둑은 이겼다고 또 졌다고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그가 한결같이 잔잔한 물 같았다. 

상선약수,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한다. 바둑에서 이긴 바둑 기사는 크게 기뻐하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또한 졌다고 해서 크게 상심하지 않는다.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잔잔한 절제란 미가 있다. 출렁거리는 파도처럼 기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겼어도 패한 것처럼 졌어도 이긴 것처럼 표정이 안온하다.

세 번째는 글로리이다. 표정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도영은 바둑사랑이 남다르다. 흑 돌을 쥔 인생을 사는 이 남자는 모든 것이 탄탄대로이다. 이 남자 눈엔 불투명한 것이 없었다. 오죽하면 일부러 동은이 바둑을 배웠을까. 18년의 복수를 완성할 큰 밑그림을 바둑이 화룡점정을 찍는다. 모든 것이 투명한 삶이 궁금하다. 바둑을 배운다면 어느 정도 가능할까. 긍정의 답이 아니라 해도 바둑은 인류가 만든 가장 고난도의 두뇌게임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드라마로 다가온 매혹적인 바둑이 지금,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다. 디지털화로 인해 사라진 기원으로 바둑을 배울 수 있는 오프라인 시장이 와해된 지 이미 오래다. 어디에서 바둑을 주인공처럼 과외로 지도받을 수 있을까. 남편이 한동안 보던 바둑 DVD를 전부 폐기 처분한 오래전이 돌아온다. 바둑 이름부터 정겨운 그 이름이 다시 휘몰아치고 있다.

[민은숙]

충북 청주 출생

제6회 전국여성 문학 대전 수상

2022 문화의 도시 홍성 디카시 수상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열린동해문학 사무국장

이메일 sylvie70@naver.com 

 

작성 2023.03.29 10:06 수정 2023.03.29 10:07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