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기행] 오대산 월정사




오대산 월정사

쿠바인처럼 혁명하고 티벳인처럼 사유하라

 

떠났다. 자본주의가 쏟아내는 닳고 닳은 도시의 피로를 고스란히 안은 채 우리는 강릉으로 떠났다. 음력 정월 초하루의 일이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창고라는 뮤지션 그룹이 불렀던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 장을 살게라는 노래를 기억해 내며 동해바다의 너른 품에 덥석 안겼다. 이날이 정월초하루라면 혁명이다. 유교를 거스르는 반역의 죄이며 종묘사직에 대한 날카로운 혁명이다. 정의의 용사 체 게바라처럼 우리는 설 명절을 과감하게 버려두고 바다를 보러 떠나면서 서울 따위는 다 잊었다. 한 가정의 수장인 나의 선동에 가족들은 유쾌하게 넘어와 주었다. ‘창고가 부른 노래 가사처럼 변함없는 나의 삶이 지겹다고 느껴져서 쿠바인처럼 혁명을 하고 티벳인처럼 사유 하러 우리는 떠났다.

 

변함없는 나의 삶이 지겹다고 느껴질 때

자꾸 헛돌고만 있다고 느껴질 때

지난 날 잡지 못했던 기회들이 나를 괴롭힐 때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 장을 살께

 

바다, 자연의 반복에서 바다만큼 완전성을 획득한 것을 무척 드물다. 강릉바다는 떠나고 싶었던 나의 알 수 없는 연민에 완전성을 더해 주었다.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 장을 사서 내안의 혁명을 이루고자 했던 나의 진심은 부끄럽지 않았다. 바다는 거기 있었고 나는 바다와 마주하며 정월초하루를 따뜻하고 우아하게 보내고 나서 월정사를 찾아 오대산으로 내달렸다. 물론 월정사를 가기로 한 계획은 서울을 떠나올 때부터 치밀하게 세운 것이었다.

 

바다가 내게 체 게바라 같은 혁명자 같다면 월정사는 달라이라마 같은 사유의 근원지다. 겨울 오대산은 그 자체가 화엄이다. 눈으로 뒤덮인 산들은 이미 화엄세상을 이루고 깨달음 따위는 개나 줘버린 지 오래인 것 같았다. 개가 부러운 월정사에 발자국을 몇 번이나 찍었는지 기억을 세기도 어렵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왔던 날도 있었고 어스름의 저녁 길을 걷고 싶어 왔던 날도 있었다. 시인으로 등단했을 무렵 그 스산하고 가없는 마음을 추스를 수 없어 달려오기도 했으며 그냥 일없이 왔다가 일없이 가기를 몇 번인지 모른다.

 

오대산은 단지 산이 아니라 내 불운한 사십대의 허허로운 유배지였다. 낭만으로 유배를 와서 절망으로 유배를 끝낸 곳이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는 절망으로 유배를 끝내지 않았다면 인생의 끝자락까지 오대산의 깊은 물소리도 몰랐을 것이며 월정사 노스님의 뽀얗고 하얀 고무신의 아름다움도 몰랐을 것이다. 내 착한 애인 고독을 사랑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저 밤하늘의 별들 사이에 다리를 놓지도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인생은 이미 그렇게 예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우주는 다 알고 있었는데 우둔한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인지 모른다. 그래서 인생은 참 재밌다. 인간은 더 재밌다.

 

 

마음과 마음사이에 뜨는 달

 

월정사 적광전 처마 끝으로 낙숫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전나무 숲길을 휘돌아다니던 바람이 월정사 마당에 쌓인 눈을 한바탕 쓸고 지나가자 햇살이 눈부시게 내렸다. 눈부시다는 것의 진정성은 월정사에서 완성된다. 오대산을 밟고 올라온 달은 화엄세계와 맞닿아 있어 월정이라는 이름을 얻었나 보다. 고요한 달을 이고 앉은 오대산 깊은 골짜기마다 수행자들은 경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리는 듯하다. 그들이 붙잡은 화두는 동안거를 무사히 지나 오대산의 맑은 달빛이 되거나 눈부신 햇살이 될지도 모른다.

 

오래전에 오대산에 와서 나는 시 한수를 남겼었다. 설익은 시어들을 붙잡고 밤을 새면서 건저올린 시는 지금 생각해보면 삶에 대한 열정이었고 나를 돌아보는 성찰이었다. 내 마음을 온통 빼앗아 가버린 오대산에서의 시간들은 지금쯤 움막을 치고 선정에 든 선승처럼 잘 익은 영혼을 가졌을 것이다. 월정사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두고 어찌 구도의 법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산중에 머무는 즐거움만으로도 이미 생사의 길 하나쯤은 알고도 남았을 텐데 월정사 풍경은 알고도 모르는 채 바람과 한 몸으로 뒹굴며 찰랑찰랑 소리공양만 하고 있었다.

 

신라의 자장도 오대산의 성스러운 기운을 일찍 감지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유학 간 중국에서 산서성의 오대산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문수보살이 전해준 부처의 사리와 가사를 신라로 가져와 이곳 오대산에 마침내 월정사를 세웠다. 오대산은 그냥 오대산이 아니라 산 전체가 불교성지라는데 신라의 자장도 고려의 나옹도 그리고 근세의 탄허도 성산의 기운으로 각자가 되어 뭇 중생을 제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도 월정사의 수행자들은 이 자비 없는 세상을 더 사랑하여 오늘도 화두를 붙잡고 치열하게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쿠바인들처럼 혁명하고 싶었던 서울의 전투적인 삶을 잠시 내려놓고 가지런히 쓸어 논 눈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는 눈을 감지 않아도 사유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번뇌 같은 것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월정사에서 나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마치 고요하게 달을 바라보는 것처럼.







전승선 기자
작성 2019.08.12 10:41 수정 2019.08.1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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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