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쉬는 날이야. 근로자의 날이잖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말 속에 왠지 모를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왜일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여전히 새벽 출근을 준비하고, 배달 앱에는 오전부터 호출이 쏟아진다. 누군가는 유급휴일을 받고, 누군가는 무급노동에 시달린다.
한국 사회에서 근로자의 날은 ‘공휴일’이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만 허락된 ‘특권’의 날처럼 느껴진다. 축하받는 날인데 왜 불편할까? 쉬는 날인데 왜 죄책감이 들까? 그날의 진짜 의미가 흐려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날을 단순히 ‘노동자의 휴일’로만 받아들이기보다, 그 이면에 담긴 구조적 불평등과 왜곡된 노동 인식을 직면해야 한다.

잊혀진 외침의 날
근로자의 날은 단지 공휴일이 아니다. 그 뿌리는 1886년 미국 시카고에서 벌어진 '하이마켓 노동자 투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8시간 노동제를 외치던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피로 얼룩졌고, 그 희생을 기리며 5월 1일은 세계 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1923년 처음으로 ‘노동절’이 열렸지만, 일제 강점기와 군사정권을 거치며 그 정신은 오랜 시간 억압당했다. 1994년에야 ‘근로자의 날’로 법제화되었지만,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라는 단어 선택부터 당시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었다.
단순한 용어 차이처럼 보이지만, ‘근로’는 일을 시키는 쪽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 표현이고, ‘노동’은 인간 삶의 본질적인 활동을 가리킨다. 이 작은 언어의 차이 속에 노동의 가치가 오랫동안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근로자의 날은 누구의 날인가?
이 날이 모두에게 동일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의 노동 현실은 ‘이중구조’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하청, 사무직과 플랫폼 노동자 사이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체 취업자 중 약 35%가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근로자의 날조차 법적으로 유급휴일 보장을 받지 못한다. 배달기사, 택배 노동자, 요양보호사, 가사도우미처럼 법적 ‘근로자’ 지위조차 애매한 직군은 이 날과 사실상 무관하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라는 명목 아래 근로자로서의 보호 장치에서 벗어나 있다. 5월 1일 하루 쉬는 것은 그들에게 단지 매출 손실로 다가올 뿐이다.
게다가, 기업마다 근로자의 날을 유급휴일로 지정하는 것도 자율에 맡겨져 있어 실제로 쉴 수 있는 사람은 대체로 대기업 사무직에 국한된다. 결국 '근로자의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계속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소외된 날이 되고 있다.
왜 근로자의 날은 이토록 분열적인가? 그 이유는 노동 자체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단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날은 단지 하루 쉬는 날이 아니라,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상징적 선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그것을 방해한다.
노동자에게 유급휴일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점, 자영업자나 플랫폼 종사자는 그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점. 이 모든 것이 단 하루, 근로자의 날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노동시간이 길다고 해서 자동으로 ‘노동 존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보상이 없고, 존중도 없고, 구조적 차별만 지속된다면, 근로자의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피로의 날’ 혹은 ‘불평등을 체감하는 날’이 되어버린다.
기념일이 아닌 행동의 날로
근로자의 날은 단지 ‘쉬는 날’이어선 안 된다. 그것은 기념일이 아니라 행동의 날이어야 한다. 단 하루의 휴식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다가오는 세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진짜 의미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제도 개편과 인식의 변화다.
노동권 사각지대를 없애는 법적 보완,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인정,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성 확보. 이러한 변화 없이 근로자의 날을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 오늘 하루쯤은 우리가 누리는 이 휴식이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특권일 수 있다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칼럼-이택호 기사 제공]
칼럼니스트
수원대학교 교수, 경영학박사
(사)한국경영문화연구원 원장
장수기업 전문가
변화와 혁신 및 리더의 역량강화 전문가
“죽기전에 더 늦기전에 꼭 해야 할 42가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