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돋보기] 성큼 다가선 'AI 시대', 공인중개사 변신은 필수

은퇴 후 한적한 생활을 꿈꾸는 김민준(68) 씨.
아내와 함께 노후를 보낼 집을 찾아 이사할 때까지 그가 기울인 노력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부동산 플랫폼에 등록한 후, 원하는 집의 조건과 집값으로 낼 수 있는 가격대 등을 입력한 것이 전부였다. 그 후로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 씨는 AI가 골라준 집들을 3D VR 투어로 둘러보고, AI가 분석한 주변 시세와 정보들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법률적인 문제점도 없다는 분석 보고를 받은 후 곧바로 온라인 계약을 진행했다.
손 없는 날을 골라 이사 날짜를 잡고 깔끔한 포장 이사까지, 김 씨 부부가 신경 쓸 일은 거의 없었다. 모든 게 AI(인공지능) 세상의 선물이었다.
아직은 영화나 드라마 속 가상현실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 구현할 수도 있는 일이다. AI 기술과 3D 기술, 그리고 디지털 계약 플랫폼을 통합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기술적 완성도와 신뢰성을 높이고 대중화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미 국내외의 여러 기업이 이와 같은 AI 부동산 거래 플랫폼 개발에 나서고 있다.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집 구하기에서 이사까지 완벽하게 책임지는 원스톱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비약적인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적지 않은 직업군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그동안 전문직으로 분류됐던 직종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인중개사도 AI에 밀려 발붙이기 어렵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위기의식이 번지고 있다. 그렇다고 지레 걱정할 건 없다. 여전히 기회는 있다. 그것도 충분히.
공인중개사,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국의 부동산 정보를 손쉽게 얻고, 가상현실로 집을 둘러볼 수 있는 시대.
AI가 부동산 시장의 풍경마저 빠르게 바꿔놓고 있다. 동네 어귀마다 자리 잡고 앉아 정겹게 손님을 맞이하던 먼 옛날의 ‘복덕방’은 현대화된 공인중개사들이 대체했고 지금은 AI 기반의 부동산 플랫폼, 이른바 ‘프롭테크(PropTech)’ 기업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며 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를 태세다.
프롭테크란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용어로, 정보 기술을 결합한 부동산 서비스 산업을 말한다. 이들의 비즈니스 영역은 크게 중개와 임대, 부동산 관리, 프로젝트 개발, 투자와 자금 조달 분야로 분류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온라인 부동산 플랫폼 이용률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젊은 세대는 물론, 중장년층까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원하는 매물을 검색하고, AI가 추천하는 투자 유망 지역 정보를 얻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격 변동 추이를 예측하고, 3D 스캔 기술로 실제와 똑같은 가상 공간을 구현하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최근 한 프롭테크가 선보인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접목된 부동산 가격 예측 시스템도 그중 하나다.
방대한 거래 데이터, 경제 지표, 그리고 인프라 변화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이 시스템은 지역별 부동산 시장의 동향을 빠짐없이 포착한다.
또 다른 프롭테크는 AI 챗봇을 통해 간단한 부동산 법률 상담이나 대출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4시간 긴 시간 동안 운영되는 챗봇은 고객 문의에 즉각 반응하고, 예약과 기본 상담 업무를 자동화함으로써 중개사의 소중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계약서와 부동산 관련 문서 처리는 복잡한 행정 업무의 대표적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자연어 처리(NLP) 기술의 발전으로 문서 자동화와 오류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공인중개사들은 빠르고 정확한 업무 처리를 실현하고 있다.
이처럼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공인중개사들은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서 디지털 혁신의 선두에 서야 한다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동시에 위기감도 느끼고 있다. 단순 매물 정보 제공이나 계약서 작성 등 반복적인 업무는 AI에 빠르게 잠식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몇몇 대형 프롭테크 기업들이 준비하고 있는 AI 기반의 자동 계약 시스템은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부동산 거래의 대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이와 함께 공인중개사의 설 자리를 더욱 좁힐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공인중개사는 공인중개사만의 고유 영역이 있다. 많은 전문가가 AI 기술이 부동산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소비자 편의성을 증대시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공인중개사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전망한다.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휴먼 터치’의 가치, AI는 대체 못 해

최근 서울 마포구에서 다세대 주택 매매를 성사시킨 공인중개사 A씨. 계약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매도인과 매수인의 의견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계약이 틀어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A씨는 양측의 이야기를 잘 듣고 며칠 동안 설득 작업을 벌였다. 특유의 친화력과 노련한 협상 능력이 빛을 발했다. 결국 양측의 합의를 끌어내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능력 있는 공인중개사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AI는 이게 힘들다.
AI는 단순히 데이터만 분석할 뿐,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나 숨겨진 속마음까지 읽어낼 수는 없다. 부동산 계약은 통계와 숫자로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인간적인 소통 능력이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임장활동 또한 디지털 3D 투어를 통한 가상현실 체험만으로 대체할 수 없다. 흔히 집은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컴퓨터 화면으로만 내가 살아갈 삶의 터전을 결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직접 보고 느끼는 임장활동은 필수다.
공인중개사만 할 수 있는 전문 영역이고, 고객과의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다. 법적, 물리적 문제점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 또한 AI에만 맡길 수 없다.
AI 시대의 공인중개사는 단순 중개인이 아닌,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컨설팅을 제공하는 ‘부동산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효율적인 매칭을 돕는다면, 공인중개사는 축적된 경험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맞춤형 전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복잡한 법률 및 세무 관련 상담 제공도 필수다. 거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인간적인 공감 능력을 발휘하여 원만하게 해결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AI 기술은 부동산 시장의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결국 거래의 최종 결정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특히 인생에서 가장 큰 자산 중 하나인 부동산 거래는 단순한 데이터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인간적인 신뢰와 감정적인 교류가 중요한 영역이다.
미국의 한 부동산 컨설팅 회사는 AI 기반의 부동산 추천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고객 만족도는 오히려 하락했다고 털어놨다. AI가 아무리 최적의 매물을 추천해도, 고객들은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주변 환경을 확인하고, 중개인과 대화를 나누며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회사는 AI 서비스와 함께 인간 컨설턴트의 전문적인 상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AI 시대의 공인중개사는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인간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공감 능력, 소통 능력, 문제 해결 능력 등의 ‘휴먼 터치’를 더욱 갈고 다듬을 필요가 있다. 디지털 편리함과 AI의 효율성 속에 가려진 인간적인 연결의 가치를 되새기고, 고객에게 진정한 신뢰를 주는 파트너로서 거듭나야 한다.
이제 현실로 다가온 AI 시대. 동시에, 전문가가 있는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시대가 될 것이다. 공인중개사도 더욱 전문가다워져야 한다. 혁신적인 AI 기술에도 능통한 진정한 전문가로의 변신은 '무죄’가 아니라 '필수'다. 스스로 변하려 하지 않으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없다.
김 경 / 부동산 칼럼니스트, (전)월간 주택저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