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은주] “분단의 그늘 아래 고립된 삶” - 북한이탈주민 고독사, 왜 반복되는가?

숫자에 가려진 존재들: 제도 밖에서 사라지는 북한이탈주민의 삶과 죽음

‘혼자 죽는 일’의 사회적 책임

2019년 서울 관악구의 한 아파트에서 탈북 여성과 어린 아들이 아사한 채 발견됐다. 이어 2022년에는 서울 양천구에서 남북하나재단의 전문상담사로 활동하던 탈북 여성이 백골 상태로 발견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두 사건은 단순히 개인의 비극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는 우리 사회가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외면하고, 포섭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고독사’의 실체다. 분단이라는 역사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남한 사회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들은 보이지 않는 고립 속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고립 — 통계에 가려진 3만 5천의 삶

2024년 기준, 국내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은 약 3만 5천 명이다. 그중 70% 이상이 여성이며, 최근에는 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 2세·3세의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언어, 문화, 교육 등 전반에서 낯설고 복잡한 사회에 던져진 이들은 쉽게 경계 밖으로 밀려난다. 

 

정부는 이들을 ‘먼저 온 통일’이라 부르며 다양한 정착 지원 제도를 마련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제도 바깥에서 ‘타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행정적 보호는 존재하나, 실질적인 통합의 언어는 부재하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자아는 외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고 했다. 북한이탈주민은 제도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일원일 수 있지만, 상징계—즉 의미와 가치의 구조—안에서는 ‘인정되지 못한 존재’로 머문다. 그들이 겪는 고립은 단순한 물리적 고립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부여받지 못하는 구조적 고립이다.

[사진 출처: 이은주  고독사예방지도사, 대한민국 축복봉사단 제공]

고독사의 얼굴 — 고립된 죽음이 전하는 무언의 신호

2024년 국내 전체 고독사 통계는 3,600건을 넘겼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의 고독사는 여전히 별도로 집계되지 않는다. 고독사는 단순히 ‘혼자 죽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누구와도 말을 잇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는, 철저한 관계의 단절이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말해지지 못한 상실은 우울로 이어지고, 장기적인 고립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될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고립은 경제적 빈곤, 언어와 문화의 단절, 제도 접근성 부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함께 견딜 공동체의 부재까지 복합적이다. 특히 탈북 여성, 고령자, 제3국 출신 자녀를 둔 가정은 더욱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들에게는 잃어버린 가족, 상실된 언어, 단절된 문화라는 ‘세 겹의 상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말할 ‘청자’조차 없다.

 

탈북의 여성화 — 젠더화된 트라우마와 정착 실패

현재 탈북자의 다수는 여성이다. 이들은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 성착취, 강제결혼 등 심각한 젠더 기반 폭력을 경험한다. 그 결과 남한 정착 이후에도 고용 차별과 사회적 낙인이라는 2차 피해에 노출된다. 이들의 트라우마는 만성적 우울과 PTSD로 이어지지만, 국가의 정신건강지원은 여전히 단기적이고 획일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가정 내 갈등 해결이나 여성 특화 재정착 프로그램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제는 생존을 위한 정착을 넘어, 회복과 자립을 위한 정착으로 나아가야 한다. 탈북 여성은 단순한 ‘지원 대상자’가 아니라, 회복의 주체로 인식되어야 한다.

 

제도 설계의 한계 — 통합은 언어로부터 시작된다

북한이탈주민의 고독사는 단지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전달할 사회적·상징적 매개체—언어, 관계, 제도, 공동체—가 결여되어 있다. 라캉은 인간이 상징계에 진입하려면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기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북한이탈주민은 이 사회에서 ‘호명되지 못한 자’로, 언어 구조 안에 포함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정부는 2024년 7월 14일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지정하고, ‘북한이탈주민과의 동행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진정한 통합은 ‘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제도 설계에서 시작된다. 남북하나재단과 hy(구 한국야쿠르트)의 ‘똑똑 안녕하세요’ 프로그램은 민관 협력의 우수한 사례다. 이 같은 생활밀착형 돌봄 모델이 전국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를 사회적 죽음으로 방치하고 있는가

북한이탈주민의 고독사는 단지 경제적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이 사회가 더 이상 그들을 ‘호명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말 없는 죽음이다. 심리적 고립과 제도적 배제, 관계의 단절이 축적된 결과다. 따라서 고독사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죽음을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을 사회의 다양성과 인권, 통일을 준비하는 중요한 축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독사는 그들을 우리가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를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다. 분단을 넘어 진정한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죽음의 침묵이 아닌 삶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공동체의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작성 2025.05.03 13:25 수정 2025.05.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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