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방개 아저씨』는 전쟁과 가난, 차별과 외면 속에서도 끝끝내 인간애를 놓지 않았던 한 떠돌이 남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감동의 서사이다. 한국 전쟁 당시 소년병으로 끌려가 전장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겪은 방개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가족의 외면과 정신적 상처 속에서 마을을 떠도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절망의 자리에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인물이다. 작가는 방개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다움이란 거창한 말이나 명예, 부유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타인을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전한다.
『방개 아저씨』는 방개라는 인물 하나로 한국 전쟁 이후 농촌 사회의 어두운 풍경을 비추는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작지만 선명한 연대를 포착해 낸다. 떠돌이로 불리지만 누구보다 정직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이 남자의 삶은,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람일 수 있는가?” 이 책은 절망 속에서도 인간애를 끝내 포기하지 않은 한 사람을 통해, 세상에 여전히 희망이 존재함을 증명해 낸다. 방개 아저씨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또한 잊고 지낸 ‘사람됨’의 온기를 다시금 되찾게 될 것이다.
<작가소개>
소설가 권길주
• 1966년 충남 아산 출생
• 추계예술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영상시나리오 학과 중퇴
• 1996년 KBS 본사 라디오 작가로 출발해 15년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
• 1995년 시 전문잡지 <심상>으로 시인 데뷔
• 2000년 한국문화예술진흥기금 시 부문 천만 원 수혜
• 2003년 첫 시집 「사막에서 별까지」 발간
[방송경력]
• KBS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특집 드라마 작가
• KBS 라디오 <열린 아침 정용석입니다> 작가
• KBS 라디오 <이영권의 경제 포커스> 작가
• KBS 라디오 <다큐멘터리 이 사람> 작가
• 그 외 KBS 라디오에서 다수의 다큐와 프로그램에 참여 및 국군방송 작가와 현대자동차 사내 방송작가, 국가기관 영상 제작에도 참여하였으며, 2019년부터 세종시 교육청 강사로도 활동
<이 책의 목차>
제1부. 한국 전쟁 소년병
1. 배고픔
2. 닭고깃국 한 사발
3. 소도둑
4. 봄볕
5. 잔칫집
6. 장항선 완행열차
7. 방개, 엉가 엄마를 만나다
8. 방개 친구, 덕구
9. 방개 사촌, 종택이 형
10. 덕구의 조카들
11. 방개, 천재 아니면 바보래유
12. 덕구 조카 미자, 서울로 튀었다
13. 방개랑 엉가 엄마랑 혼인하지 그려
14. 덕구는 부자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15. 이런 일은 난생처음 봤네 그려
16. 문 씨 배상비를 마을 사람들이 추렴한다는 거유
17. 엉가, 학교 들어가유
18. 미자가 무지 이뻐져서 미스코리아 대회 나간다구?
19. 상 타면 동생들 서울로 유학시킬 꺼유
20. 미자, 미스코리아 어떻게 됐슈?
21. 방개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니
22. 방개가 사랑하는 여자, 순자는 귀머거리다
23. 순자 어머니의 느닷없는 청혼
24. 방개의 노래
25. 엉가 엄마, 포목점에 가다
26. 엉가 엄마가 만든 옷에 날개가 돋쳤다
27. 엉가 아빠가 양장점에 나타났다
28. 엉가 엄마가 새로 만든 방들
29. 방개, 죽음의 병에 이르다
30. 지 같은 사람두 교회 댕겨두 돼유?
제2부. 사랑을 잃고 나서
1. 방개, 설교 시간에 방귀를 터트리다
2. 검정 솥단지를 가져온 여자
3. 고등고시 떨어졌소
4. 서울 청년, 공순이를 만났다
5. 고등고시 떨어지구 신춘문예 당선했슈
6. 너 왜 죽였어?
7. 속죄의 길을 떠난 젊은 과부
8. 엉가 엄마의 고독
9. 깊은 물에 그물을 대야 괴기가 많이 잡히는 겨
10. 엉가 엄마의 새 남자
11. 그 여자를 사랑해서 괴로운 건가유?
12. 나는 그 여자를 무덤까지 따라가서라도 사랑할 꺼유
13. 시를 쓰는 방개
14. 내 마음은 나도 물러유
15. 순자 씨가 죽었다네
16.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17. 과거를 청산할 결심
18. 산속에 사는 남자
19. 내가 밤중에 가서 지켜줘야지
20. 저주의 끈을 끊어내려고 해요
21. 넌 누구냐?
22. 소년의 두 갈래길
23. 알을 깨고 나온 것
제3부. 시인으로 사는 방개
1. 그리움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 있다면
2. 세상의 끝에 당신을 두고 가야 하나요
3. 마음이 허전해서 현충사에 매일 가유
4. 성웅 이순신 연작시를 쓰고 싶어유
5. 난세의 영웅이 났지유 뭐
6. 이순신 영화 제목은 뭐라고 지을 거여?
7. 기환, 영화 각본을 쓰기 시작하다
8. 아름답고 눈부시게 그녀가 웃다
9.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산같이 정중하라
10. 절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사양합니다
11. 소록도로 간 과부가 돌아오다
12. 사랑은 파도를 타고
13. 홀로 있는 밤에
<이 책 본문 中에서>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방개는 짚더미를 쌓아 올린 짚가리에서 지푸라기를 털면서 밖으로 나왔다. 짚가리는 방개가 겨울이면 주로 이용하는 집이다. 가을에 벼를 베고 나면 벼 이삭을 털고 난 볏짚의 낫가리를 높이 쌓아놓은 그곳이 방개의 방이고 지붕이고 추위를 피해서 잘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누구나 방개가 낫가리를 높이 쌓아놓은 짚가리에서 겨울이면 잠을 자는 것을 인근의 마을 사람들도 다 아는 기정사실이다. 생각보다는 지푸라기로 만들어진 건초더미라서 그 안은 무척이나 훈훈하고 따스함이 깃들여 있는 공간이었다. 한가운데를 깊이 파서 그 안에 잠을 자고 일어난 방개는 거름 냄새가 나는 지푸라기를 툭툭 털고 나니 갑자기 춥고 배가 무진장 고팠다.
방개는 우선 둥근 박을 반으로 잘라 만든 종근락 하나를 머리맡에서 소중하게 들어 올렸다. 박으로 만든 종근락은 그의 재산 1호였다. 그에게는 노란 종근락 하나가 전 재산이다. 두 벌 옷도 없는 그에게는 밥을 먹어야 하는 밥그릇 대용인 노란 종근락이 너무나 중요한 물건이다. 지금 쓰는 종근락은 지난가을에 윗동네 사는 과부 박 권사님이 한 개 주신 거다.
“방개야, 밥 굶지 말고 올겨울에는 이 종근락으로 동네 사람들한테 밥 잘 얻어먹고 다녀야 혀. 에쿠, 내가 부자면 네 아침은 내가 매일 주면 좋겠는데 나도 자식 넷에 과부 신세니 너까지는 못 먹이겠다. 하나님은 과부에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고 부흥강사가 와서 말씀하셨으니까, 언젠가는 우리 집 쌀독에 쌀이 넘치고도 남을 겨. 그때는 나도 너한테 맘껏 밥을 한 양푼씩이 퍼서 줄량이니까 그때까지만 참어봐 잉.”
박 권사가 하얀 박꽃에 매달린 박을 잘도 익혔는지 노란색 종근락은 안이나 밖이 똑같이 그녀의 마음처럼 둥글고 매끄러웠다.
“아이고, 고맙구먼요, 박 권사님. 이 종근락 지 밥 얻어먹는 밥그릇으로 잘 쓸게요. 그리고 박 권사님한테 하나님이 쌀 많이 주시길 교회보문 저두 기도하고 다닐께유.”
방개는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떠돌이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총각이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지만, 그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그다지 없었다. 이 동네 저 동네 동냥을 다니기도 하고 일을 해주고 밥을 얻어먹기도 했는데, 그러나 그가 하는 행동은 특이하게도 알고 보면 아무나 절대 할 수 없는 선에 가치를 둔 아주 특별한 일들을 했다.
<추천사>
장편소설 『방개 아저씨』는 한국 전쟁의 상흔과 사회의 외곽에 밀려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따뜻함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 권길주는 주인공 방개 아저씨라는 한 떠돌이 인물을 중심에 놓고, 한국 전쟁 이후의 농촌 마을과 그 속 사람들의 삶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며, 우리가 종종 잊고 사는 인간 존재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주인공 방개 아저씨는 어릴 적 소년병으로 전쟁터에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인물이다. 전쟁의 상처는 그를 정신적으로도 황폐하게 만들었고,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한 그는 끝내 집을 떠돌며 남의 집 일을 하며 밥을 얻어먹는 삶을 살게 된다. 짚가리를 겨울 잠자리 삼고, 밥 한 끼를 얻기 위해 열두 집을 돌아다녀야 하는 그의 삶은 극한의 가난을 상징하지만, 정작 방개의 말투나 표정, 행동에서는 삶에 대한 절망보다는 유머와 온기가 느껴진다.
작가는 방개를 단순한 비극적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방개는 오히려 농담을 잘하고, 일에 성실하며, 남몰래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진달래꽃을 꺾어가는 로맨티스트다. 심지어 산에서 벌어진 성폭행 위기 상황에서는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여학생을 구하고, 자신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 청소년들과 맞서 싸운다. 이런 장면에서 방개는 비록 떠돌이지만 도리와 정의를 아는 사람, 진정한 용기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 속 방개 아저씨 주변 인물들도 다채롭다. 덕구와 엉가, 그리고 엉가 엄마, 작가가 꿈인 청년 기환 등을 통해 작가는 각기 다양한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며 자신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다양하고 친근하게 보여준다. 특히 방개와 함께 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덕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알고 실천하며 사는 방개를 동경하고 지지하는 따뜻한 친구이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덕구와 방개의 우정은 우리에게 잔잔한 평안을 준다.
그 밖의 소설 속 많은 삶,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새벽부터 일하는 과부 박 권사나 술과 화투에 빠져 가족을 피폐하게 만든 유 씨, 눈 덮인 새벽에 소도둑을 쫓아 나서는 한 씨 어르신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웃음으로 감추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 이들은 모두 전쟁 이후의 가난하고 피로한 삶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작게나마 돕고 살아간다. 여기에서 작가는 이들의 일상을 통해 그 시대의 공동체가 가진 따뜻한 온기와 인간애를 포착해 낸다.
이 소설은 방개 아저씨의 삶을 따라가며 과연 ‘존엄’이란 무엇인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독자에게 묻는다. 작가는 방개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온기를 나누고, 사랑하며, 웃고 울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하고자 한다. 전쟁과 가난이 인간성을 짓밟았던 시대에도, 어떤 이들은 끝내 그것을 놓지 않았고, 그들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소설 속 방개 아저씨의 삶을 통해,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작가는 방개의 삶을 빌려 조용히 말한다. “사람은 사람 곁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권길주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504쪽 / 신국판형(152*225mm) / 값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