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5일,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강연에서 “안미경중(安美经中)” 노선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의 대외 전략을 대표해온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라는 현실주의적 접근에 공개적으로 선을 그은 발언은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대통령은 “과거에는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전이었기에 한국이 ‘안미경중’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서, 미·중 경쟁의 격화로 공급망이 재편된 지금은 그러한 논리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그는 “미국이 중국과 경쟁하면서도 일부 영역에서는 협력을 이어가듯, 한국 역시 중국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한국이 단순히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외교 전략을 모색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의 시각, “안미경중은 한국의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
중국 언론은 이번 발언을 주목하며, “안미경중의 종언”이란 표현에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측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스스로를 ‘중견 강국’으로 규정하면서도, 실제 외교 전략에서는 미국의 대중 견제 노선에 종속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어쩔 수 없다(别无选择)”는 식의 논리가 전략적 자율성 결핍을 정당화하는 변명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사드(THAAD) 배치 사례에서 보듯,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한 결정이 오히려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고, 한국 기업들이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공급망, 반도체, 안보 이슈에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기계적으로 호응한다면, 이는 곧 “한국 스스로의 국운을 위험한 전차에 묶는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중국 측의 우려다.
중국은 한국에 대해 “대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실질적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한 ‘필수 과제’가 바로 대중 관계 관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한국 외교의 본질적 질문은 ‘미국이냐, 중국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중국과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한한령(限韩令)의 지속 가능성, 경고와 기회
사드 배치 이후 내려진 이른바 ‘한한령(限韩令)’은 양국 관계 악화가 경제·문화 교류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비록 최근 몇 년간 비공식적으로 일부 해제가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여전히 이를 정치적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중국 입장에서 한한령은 단순히 “문화 수입 제한 조치”가 아니라, 한국이 대중 전략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를 가늠하는 신호장치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한국이 다시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에 과도하게 기울 경우, 한류 콘텐츠, K-뷰티, K-푸드 등 한국이 가장 강점을 보이는 산업 분야가 다시 제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중국은 최근에도 ‘한한령’을 전면적으로 제도화하지 않고,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한국과의 문화·경제 협력을 완전히 단절할 의사가 없음을 의미한다. 즉, 한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면, 한한령은 언제든 해소될 수 있는 잠정적 조치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한국이 풀어야 할 ‘필수 과제’
한국의 국가 이익은 단순히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의 줄타기가 아니라, ‘전략적 자율성’ 확보에 달려 있다. 대미 동맹은 역사와 현실이 만든 선택이지만, 동시에 한국은 중국이라는 ‘옆집 이웃’과의 관계를 외면할 수 없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이자 최대 무역 파트너와의 관계를 소홀히 한다면, 그 대가는 한국의 산업, 고용, 소비자 모두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린다. “안미경중의 과거형(過去形)”이 단순히 노선의 폐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외교 전략의 필수 전제임을 일깨운 것이다. 한국이 지금 풀어야 할 문제는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지가 아니라, “어떻게 두 대국 사이에서 스스로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장기적 국익을 극대화할 것인가”라는 필수 질문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이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국 외교의 가장 큰 자산은 “안정적이고 건강한 중·한 관계”이며, 이는 한반도 평화와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에 직결된다. ‘한한령’은 그 관계의 바로미터이자 경고 신호다. 한국 정치와 재계가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결단을 내릴 때, 비로소 한국은 “대국 사이의 피동적 조연”이 아닌, 당당한 전략적 주체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윤교원 대표 The K Media & Commer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