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엔 꼬부랑 할머니가 홀로 산다

오곡도의 섬신령

밭매는 오곡도 할머니


하찮음이다. 쓸쓸할 것도 없고 외로울 것도 없음이다. 눈을 뜨고 있으나 눈을 감고 있으나 마찬가지다. 시간은 새로워지지 않고 멀리 점점이 박힌 섬들이 풍경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물이 흘러가는 것인지 흐르는 것이 물인지 바다는 마구 횡설수설로 몰려다닌다. 그러고 보니 바다는 오만하다. 섬은 바다와 합쳐지기를 바라는데 바다는 여전히 오만하다. 나는 깊고 서늘한 들숨으로 와 닿는 바다를 편애했다. 몸 속 구석구석 오지까지 순례하는 바다의 향기를 편애하며 그 오만을 즐겼다. 섬은 멀어서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섬의 기별은 아직도 바다에 가 닿지 않는다. 가 닿을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풍경으로 늙어간다. 저 바다 건너 풍경으로 숨겨 놓고 추억으로 멀어져 간다. 그러나 섬은 결핍을 넘어 기어이 바다와 합쳐진다. 아수라도 아라한도 이미 떠나버린 그 섬 오곡도에 해가 돋아났다.

 

 

섬은 느리게 흐른다. 섬의 동편은 늘 풍경 안쪽으로 흐르고 아침 그늘로 가득 찬다. 그 그늘 속으로 섬의 신비가 느리게 흐른다. 오랫동안 그리움을 만들어 내던 섬의 신비가 주술로 바다를 경외 하고 있지만 비진도 쪽을 바라보고 있는 집들은 폐허로 삭아가고 하늘은 바다보다 멀리 멀어져간다. 그리움과 경외의 다리를 놓은 아침 햇살이 바다에 이르러서야 바다는 넓어지고 섬문이 열린다. 붉게 떠오르다가 바다로 제 그림자를 길게 세우는 태양 사이로 구름이 몰려든다. 구름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벼락 치듯 만들어 낸다. 태양이, 구름이, 바람이, 하늘이, 바다가 제 흥에 겨워 제각기 하루의 운명을 만들어 내는데도 오곡도 할머니는 눈길 한번 두는 일 없이 오늘도 무심하다. 그 경이로움에 눈동자를 떨며 나 혼자 수선을 피워댔다. 머리에 질끈 수건을 두르고 꼬부랑 할머니가 햇살이 퍼지기도 전에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간다.

 

절박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사는 섬, 혼자 살아가야 하는 섬은 절박한 생존일 거라고 지레 짐작하며 왔다. 꼬부랑 할머니가 홀로 사는 오곡도를 찾아 통영 미륵도 척포항에서 동백호를 탔을 때도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뱃사람들은 저 섬처럼 말이 없고 그저 무뚝뚝하게 바다를 달리기만 했다. 한산도가 뱃길 옆으로 지나가고 용초도가 그 옆으로 멀어지다가 비진도를 스쳐 가더니 오곡도가 멀리 보였다. 일부러 섬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 왔다. 경험하지 않은 앎이란 지식에 불과할 뿐이다. 지식으로 자연을 판단할 일은 아니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그저 마음이 불편하면 불편한데로 즐거우면 즐거운 데로 오곡도 꼬부랑 할머니를 만나고 싶었다. 나는 바다와 섬과 할머니를 만나러 가면서 뱃머리에 기대 혼잣말을 지껄였다. 마음으로 지껄이고 글로 갈아대는 나는 왜 저 바다 앞에서 침묵하지 못하는 걸까. 덜 삭은 언어의 한계만을 겨우 아는 내가 불쌍하다. 저 오곡도의 깎아지른 벼랑을 보며 내가 오히려 절박했다. 그렇다. 절박한 건 나다. 절벽 아래로 가파르게 놓은 계단을 오르는 내가 절박하고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내가 절박했다.

 

 

오곡도 돌담 밑에는 봉숭아가 만발했다. 겨울 내내 붉은 꽃을 피워 내던 동백은 제 나이만큼이나 많은 동백 열매를 떨어트리느라 후두둑거린다. 바다 위를 내달리던 바람이 계곡을 넘어 대숲을 흔들어 대면 능소화가 꽃잎을 열고 햇살을 삼키기 바쁘다. 먹이를 찾아 솔개가 날자 모든 새들이 순간 숨을 멈춘다. 깡패새 까치도 숨을 죽이고, 깍깍 거리는 까마귀도 숨을 멈춘다. 휘파람새는 아주 작은 소리만 저들끼리 주고받는지 솔바람소리 같다. 그 솔바람 사이로 산개구리 합창이 들린다. 이상하다. 오곡도에는 산개구리도 낮에 목청을 돋구는가보다. 대장이 선창을 하면 뒤를 이어 나머지가 한꺼번에 후창을 한다. 재미있는 놈들이다. 산개구리 소릴 들으며 우뚝하게 솟은 산머리에 올라 섬을 내려다보았다. 큰 마을 너머 작은 마을이 보인다. 한때 처녀 총각도 많이 살았고 어부들의 노래 소리도 뱃전을 울리던 곳, 재잘 거리는 아이들이 큰 마을 넘어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 길을 오갔는데 지금은 모두 떠나고 할머니 혼자서 큰 마을을 지키고 있다. 동백꽃이 열 번 만 피고 지면 오곡도는 할머니를 잃고 섬 홀로 남을지 모른다.

 

섬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는 온통 섬이다. 섬이 바다다. 멀리 구을비도가 보이고 소지도 국도 좌사리도도 보인다. 연화도 욕지도 노대도도 나 여기 있소 하고 손짓한다. 동쪽으로는 한산도가 당당하게 서 있고 그 뒤로 뒤통수만 보이는 거제도가 바다안개에 쌓여 있다. 손끝에 닿을 듯 한 비진도 너머 장사도 가왕도 까지 보고 다시 눈길을 돌려 남해를 바라보면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바다가 보인다. 동쪽으로 조금 더 가서 자세히 보니 한산도와 비진도 사이로 용초도가 보인다. 섬에서 섬으로 시집 온 할머니의 고향 용초도가 코앞에 있다. 할머니는 저 섬 용초도를 잊은 건 아닐까 섬과 섬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내내 바다를 바라보며 할머니가 되어 보았다. 그런데 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도 길 위에 있었고 오곡도 꼬부랑 할머니는 시간위에 있었다. 할머니는 말이 없는데, ! 나는 혼자서 너무 많은 말을 지껄였다.

 

섬은 사람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섬은 사람이다. 그래서 섬은 꼬부랑 할머니의 벗이다. 지나가는 바람이 말을 건넨다. 저 건너섬의 소식을 전해주고 산개구리는 개골개골 말동무 해준다. 아기 염소는 할머니 치맛단을 물며 어리광을 부리고 삔추삔추 울어대는 동박새와 눈 맞추면 하루해가 짧다. 산기슭에 기대 밭을 일구고 나면 방풍이 자라나고 고구마가 실하게 뿌리를 내린다. 호박은 할머니를 닮아 저 홀로 누렇게 익어가고 빨갛게 물들어 가는 고추는 맵고 달다 못해 잘 익은 과실 맛이 난다. 허리 한 번 펴고 저 바다를 바라보면 섬은 이미 할머니가 되어 있다. 할머니가 섬이다. 가끔 들르는 어촌 계장 배를 타고 통영 서호 시장에 농사지은 것들을 내다 팔고 쌀이나 비누 고무신 등을 사온다. 할머니가 잠시 비운 섬은 장에 간 할머니를 기다리느라 섬 문을 수 없이 열었다 닫았다 한다. 섬은 할머니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다.

 

 

나는 할머니의 굳은살을 만져 보았다. 그 굳은살은 할머니의 삶의 무게를 이끌고 섬이 되기 위해 단단한 고통을 달고 있었다. 고통은 더 이상 진화하지 않는다. 고통에게 저항하지 않아도 고통은 할머니에게서 순하고 느리게 소멸한다. 인간에게 허용된 무릉도원의 문 앞에 당도한 할머니가 도인이다. 천당도 모르고 지옥도 모르는 할머니는 그래서 이 세상에 잘난 사람들보다 행복하다. 종교를 들이대고 철학을 외치며 스스로 도인으로 포장한 사람들의 위태로운 세상은 할머니 앞에서 염치없는 퍼퍼먼스다.

 

애초부터 하찮음이다. 삶이나 죽음, 절박과 생존을 언어로 규정지을 수 있을까. 저렇게 명료하고 단순한 할머니의 진리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있음''없음' 에 대해 말을 걸려고 했던 내가 어리석다. 그 섬엔 꼬부랑 할머니가 홀로 산다. 오늘도 그 섬에선 해가 뜨고 해가 진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8.07.06 18:19 수정 2020.07.0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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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