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금강산 화암사




금강산 화암사


 

틀에 박힌 세상에 안주하겠는가.

흔들리는 세상에 도전하겠는가.


틀에 박힌 세상을 열고 뛰쳐나와 흔들리는 세상에 도전하는 39명의 괴짜들이 모여 책을 냈다. 개성이 강하고 구속받기를 싫어하는 야생 청춘의 진정한 덕후들이 자신들이 믿는 행복을 찾아 더 깊은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서 펴냈다. 나는 이 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내 젊은 날을 돌아보기도 했다. 역경 앞에서 격렬하게 흔들리면서도 미세하게 즐기는 39인의 젊은이들은 이 시대를 대변하는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다. 우리출판사에서 여러 권의 책을 내신 재미작가 이태상 선생님이 기획하시고 39인의 젊은이들과 함께 글을 썼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서 날아오신 이태상 선생님을 모시고 젊은 대학생 작가와 나, 그리고 이사님과 함께 서울, 제주도, 강원도를 여행했다.

 

팔순을 넘긴 이태상 선생님은 고향인 종로에서 추억 찾는 즐거움에 빠졌다. 저승문 앞을 서성이는 옛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시고 옛 지인들을 만나 오랜 정을 풀기도 하시면서 서울에서의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출판기념회를 며칠 앞두고 우리 네 사람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선생님, 대학생 작가, 이사님, 그리고 나……. 이 어설픈 조합의 우리는 제주를 싸돌아다니며 제주의 가을을 맘껏 즐겼다. 맛있는 것, 멋있는 것 투성이의 제주는 이 이상하고 어설픈 조합의 우리들에게 더 없는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제주에서의 즐거운 며칠을 보내고 올라와 우리는 다시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 인제 은비령 깊은 산골에서 수행정진 중이신 스승님의 토굴에 우리는 짐을 풀었다. 스승님은 세 개의 다리를 가진 여신과 연애를 하러 소백산으로 출타중이셨다. 나는 계율의 다리와 선정의 다리, 그리고 지혜의 다리로 선 깨달음의 여신 계정혜와 로맨스에 빠진 스승님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 깊은 산골 은비령은 세 개의 다리를 가진 계정혜 여신이 스승님과 연해하러 떠났어도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육바라밀 여신도 있고 세 개의 머리를 가진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도 있으니 만행 떠난 스승님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곳이다.

 

우리 일행은 설악이 숨겨놓은 한계령의 안개에 취해 천상을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하고 속초의 가을바다가 만들어 내는 파도를 바라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팔순이 넘은 이태상 선생님은 더욱 그러했을 것이지만 선생님은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자신의 시간을 내색 하지 않으셨다. 인생은 짧고 젊음은 더욱 짧은데 쉬이 늙어버린 육신의 고달픔을 파도가 위로해 주고 있었다. 틀에 박힌 세상을 거부하고 흔들리는 세상으로 뛰어들어 세계 곳곳을 돌며 자신만의 철학으로 세상을 살아오신 선생님의 시간이 속초 바다에서 바다가 되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강원도 깊이 들어앉은 금강산 화암사에로 갔다. 오래전에 조국을 떠난 선생님께 금강산 화암사는 최상의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역사처럼 시간의 역사도 같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숱한 시간들이 금강산 자락에서 사라지고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이 절이 흥하면 저 절이 폐하는 시간의 수레바퀴 안에서 신라의 승려 진표율사가 창건한 화암사는 천년의 시간을 깔고 앉아 흥망성쇠의 역사를 새겨놓고 있었다. 화암, 그 이름처럼 큰 바위가 화암사 위에 떡하니 서서 화암사를 호위하고 있었다. 화암사는 금강산 남쪽 제1봉 신선봉 아래 산허리를 배고 앉아 가까이에 있는 영랑호를 바라보고 있고 멀리는 푸른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양양과 간성까지 발아래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은 오랫동안 눈에 담아도 부족함이 없었다.

 

세상에 폐를 끼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게 신세지지 않고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아도 좋을 것 같은 곳이 강원도다. 강원도 산골 깊은 금강산 자락쯤이면 세상의 귀를 닫고 눈을 씻으며 살아도 좋을 듯싶다. 나는 내안의 고요와 만나는 기쁨을 화암사에서 잠시 느껴본다. 가을 숲은 더 없이 풍요롭고 화암사 부처님은 말없이 고요한데 나는 저 북녘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을 따라 경내를 무심히 걸으며 내 안의 나와 만나고 있었다. 가을은 금강산 화암사에서 익어가고 나는 나에게 갇혀 나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내 안에 들어앉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얄팍한 마음, 삐딱한 마음, 염치없는 마음, 속 좁은 마음, 부산한 마음, 기웃대는 마음을 바라보며 금강산 바람에게 마음을 풀어놓았다. 후련하게 나를 열어 마음을 씻어냈다.

 

이제는 인생에게 묻지 말고 인생에게 대답해 줄 나이가 되었다.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인데 불완전한 내가 늘 인생에게 묻곤 했다. 삶은 누구에게나 하나도 부족함이 없다. 아무 문제도 없는 삶에게 나는 이제부터 묻지 말고 대답을 해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가을바람이 유난히 맑은 화암사에서 나도 이제는 인생에게 답해줄 무언가가 있다는 것에 환희를 느꼈다. 우리는 금강산 화암사를 떠나 젊은이들의 도시 가평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가슴 뛰는 대로 사는 통쾌한 젊은이들의 당당한 청춘보고서에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보름간의 고국 방문을 마친 선생님은 어린아이처럼 행복해 하셨다.


출발한 곳이 끝나는 곳이고

끝나는 곳이 다시 출발하는 곳이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20.02.10 10:15 수정 2020.02.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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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