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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새벽이라고 말해본다
이마에 띠를 두른 농성현장의 그들처럼
어둠은 물러나려 하지 않지만
강제해산의 호각을 울리고
간혹, 불길함은 무리를 지어 골목을 휘젓고 지나갔고
자주, 비행청소년처럼 소란을 피우기도 했지만
행복이 곧잘 부풀려지듯 고난도 엄살이 심했다
지나고 나면 다 견딜 만했다고 말하지 않던가
어둠도 곰곰이 따져보면 모호한 기운의 다른 해석일 뿐
입으로 퍼 나르는 말들에 유혹된 탓이다
이쯤에서 새벽이라고 말해본다
말씀의 지도를 펴 놓고
명랑한 목소리로 쭉쭉 읽어 내리라
겨울 들녘에서 쇄빙선의 앞머리 같은
향기를 꿀벌처럼 거두리라
가뿐한 신을 신고 꿀벌의 동작을 배우리라
어디쯤에서 다시 해는 지고 캄캄해지거든
이제껏 그래온 것처럼 거기를
또 새벽이라고 불러보리라
[조성자 시인]
『미주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시문학』 등단
『미주서시문학상』 우수상 수상
산문집 ‘바늘의 언어’
시집 ‘기어가는 것은 담을 넘을 수 있다’ ‘새우깡’ ‘아카펠라’